정부-IMF '초긴축'합의 금융시장 사실상 마비…기업들 자금 확보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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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된 가운데 정부와 국제통화기금 (IMF) 이 '초긴축' 에 합의하면서 금융시장이 사실상 마비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부실 금융기관 정리 태풍이 예고되면서 생사의 기로에 서게된 금융기관들이 신규대출 중단은 물론 이미 기업들에 빌려준 돈까지 일제히 회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기업들은 대출 회수에 대응키위해 당장 필요치않은 돈이라도 무조건 확보하고 보자는 가수요까지 겹친 자금확보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에따라 한국은행이 돈을 아무리 풀어도 금융기관안에서만 맴돌 뿐 정작 기업에까지 가지는 못하는 형국이다.

기업중에서도 삼성.현대.LG등 주요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은행대출은 물론 주식발행.회사채.무역금융.어음발행등 사실상 모든 자금조달창구가 막히는 기업 자금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18개 업종 40개 업체를 대상으로 긴급전화설문조사를 1일 실시한 결과 무역업계는 은행들의 잇따른 수출금융 중단.기피로 수출입 거래까지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며, 이같은 현상이 1~2주 지속될 경우 수출업체의 연쇄도산까지 우려된다고 응답했다.

1일 자금시장에서는 IMF협상타결을 계기로 회사채.기업어음 (CP) 등의 금리가 치솟으면서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은 반면 금융기관간 초단기자금 거래수단인 콜은 금리가 14~15%에 머무르며 금융권내에선 돈이 남아도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주식시장에선 주가하락으로 기업들이 증자에 나서질 못하고 있다.

쌍용.보람.서울증권등은 최근 신규 상장기업의 공개 주간사를 맡았다가 주간사영업 정지 조치를 감수하면서까지 시장조성의무 (3달간 주가를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를 포기하는등 증자.공개를 통한 직접자금조달도 막힌 상태다.

두산그룹 기조실 김철중상무는 "금융기관들이 무조건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기업 입장에선 내일이 예측안되는 상황" 이라며 "돈만 빌릴수 있다면 금리.만기.금액은 가리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문 (不問) 식 자금확보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 말했다.

한 그룹 관계자는 "2~3개 굴지 그룹들이 자금을 싹쓸이하고 있다" 며 "이때문에 다른 기업들은 물품대금을 미루고 당좌차월.차입대에 의존하는등 그야말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대우경제연구소 신후식연구위원은 "정부.IMF 합의이후 실세금리가 내년 초반에는 20%를 넘어서는등 내년 상반기까지는 고금리추세가 지속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대우증권 신두영 (申斗泳) 주식인수팀장은 "금융기관들이 금리의 높고 낮음 (마진) 을 떠나 대출을 줄여 살아남으려는 생존게임을 벌이는 것이 기업 자금난의 핵심" 이라며 "부실금융기관 정리를 이왕 할 것이면 빨리 해야 심리적 안정을 기할 수 있다" 고 말했다.

민병관·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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