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한·미동맹과 남북협력 함께 가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튼튼한 안보에 바탕한 남북 간의 화해협력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끄는 필수조건이다. 우리의 안보는 국가의 자주역량과 한.미동맹을 축으로 이끌어 왔다. 그러나 분단 반세기를 되돌아볼 때 한.미동맹과 남북협력의 병행발전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냉전시기와 달리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의 교류협력은 큰 진전을 이뤄 왔다. 하늘과 땅.바닷길이 열렸고, 인적 왕래와 물적 교류도 크게 증대됐다. 남북 간의 대화도 정례화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남북 장성급회담이 개최됐다. 2000년 9월 남북 국방장관회담 이후 4년여 만에 열린 이 회담에서 양측은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합의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경제협력과 안보협력을 토대로 한 남북관계의 균형발전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느낌이다.

*** 한반도 주변국가 협력도 중요

최근 우리의 안보문제와 관련한 중요 이슈는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문제, 주한미군 재편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큰 틀 속에서 6자회담이 진행돼 왔다. 지난 26일 폐막한 제3차 6자회담에서는 미국의 '포괄적 비핵화'와 북한의 '동결 대 상응조치'라는 양측의 주장을 실질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참가국들의 인내와 노력, 북.미 양측 한발짝씩의 양보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도 지난 18일 지역과 규모.파병시기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확정됐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감축.재배치 문제는 혼미에 싸여 있다. 한.미관계가 시련기인지, 전환기인지 그 분간이 어렵다. 시기.절차.규모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있지만 양국의 설명은 매끄럽지 않다. 한국과 미국은 주한미군의 숫자는 줄이되 무기체계의 현대화로 오히려 전력이 증강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향후 3년 동안 110억달러를 투입해 전투력을 증강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자주국방 차원에서 전력을 증강시켜 안보 공백을 메우겠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양국 모두 강한 의지를 보인다.

문제는 양국의 전략적 목표에 있어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미.일동맹의 강화와 함께 주한미군을 지역군인 신속기동군으로 전환해 동북아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나아가 세계 평화유지군으로서 그 역할을 하겠다는 맥락으로 이해된다. 반면에 우리는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을 방위하며, 한.미동맹과 남북협력을 축으로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해소하고, 나아가 주변 4강과의 협력을 통해 동북아지역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의 차이점은 상황변화에 따라 우리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일례로 한.중.러 관계와 남북관계다. 한.중 간의 경제관계는 날로 확대되고 있으며, 연해주를 거점으로 하는 한.러 간의 경제협력도 증대되고 있다. 중.러 견제를 위한 신속기동군의 역할은 한.중.러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미관계 개선을 기대해온 북한도 주한미군의 재편과 신속기동군으로의 전환이 북침용이라고 주장한다. 북.미관계의 악화는 남북관계 발전을 제한할 수 있다. 이처럼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발전뿐 아니라 북.미관계의 개선과 주변 4강의 협력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한.미, 주한미군 성격 놓고 이견

신속기동군으로의 전환은 주한미군의 성격과 연관을 가진다. 한.미상호방위조약상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해 한국 주둔을 허용하고 있다. 동북아의 지역군으로서 주한미군의 성격이 변한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넘어서는 범위다. 상호방위조약이 유효하다면 이 문제를 동맹관계에서 풀어야 한다.

근간에 한.미동맹과 남북협력을 놓고 친미니 친북이니 하는 이념적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소모적이며 국익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맹과 협력은 함께 가야 한다. 반세기 넘게 지켜온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남북협력이 추진돼야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의 길로 갈 수 있음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