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로켓 발사 후 개성공단, “설비·인력 다 여기 있어 떠나고 싶어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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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 몰라도 겉으로는 절대 드러낼 수 없어요. 인력과 각종 설비가 이곳에 있는데 어떻게 나올 수 있겠어요.”

북한 개성공단에서 섬유류를 생산하는 P사의 관리담당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현대아산 직원 억류, 북한의 로켓 발사 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협의회 유창근 부회장은 7일 “평소처럼 통행이나 생산은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면서도 “불안감이 차츰 커지고 있어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9~20일 키 리졸브 훈련기간에 예고 없이 북측이 통행제한 조치를 반복했고, 현지 직원 한 사람이 장기 조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5일 북한은 장거리 로켓까지 발사했다.

◆겉으로는 차분=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일단 개성공단에는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의 한 입주기업 대표는 “최근 업무 교대차 내려온 회사 주재원이 ‘북한 측 세관 직원 등 몇몇 인사가 로켓 발사를 언급하며 자랑스러워 하더라’고 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산 라인 등에서 일하는 북측 일반 직원은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개성공단 현지의 분위기는 이처럼 겉보기에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고 입주기업은 전했다. 입주기업협의회 이임동 사무국장은 “로켓 발사는 예정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가 원자재와 식량 등을 넉넉히 준비했다”며 “통행이나 생산에 차질이 있다는 얘기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입주 취소 잇따라=겉모습과 달리 개성공단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전기·전자 업종의 한 입주기업 담당자는 “외부 주문을 받아 임가공을 하는 소규모 기업은 일감이 줄어드는 등 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아산 직원의 억류는 개성공단 직원에게 심리적 악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공화국 비판’과 ‘탈북 책동’을 조사한다며 억류한 개성공단의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에 대한 남측 인원의 접견을 7일까지 거부했다.

입주기업협의회 유창근 부회장은 “주재원 가족들이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주재원 파견 등에 각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개성공단에 입주하려다 취소하는 기업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전자부품 업체 아비코전자는 7일 개성공단의 아파트형 공장을 분양받아 입주하려던 계약을 해지한다고 공시했다. 지난달 초에는 휴대전화 부품업체인 미성포리테크도 같은 이유로 공장 입주계약을 해지했다.

◆정부가 해결책 내야=입주기업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업체는 현재 상황을 푸는 데 정부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아산 직원 사례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적절한 대응 규정이 우선 필요하다. 또 최근의 통행제한 조치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 주는 장치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천재지변 ▶공단 폐쇄 ▶3개월 이상 가동 중단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50억원 한도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남북관계의 경색이 풀리기 전에는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7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이명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인력 축소 문제와 관련해 “기업마다 사정이 각기 다르므로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승녕·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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