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메노티의 음악세계…알기쉬운 오페라로 인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현재 생존해 있는 오페라 작곡가로 가장 인기있는 사람이라면 단연 이탈리아 태생의 미국 작곡가 지안 카를로 메노티 (86) 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도 현대 오페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자주 상연되고 있다.

대부분이 1~2시간 내외로 짧은데다 오케스트라 악기편성도 비교적 간단해 손쉽게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대 오페라 치고는 난해한 부분도 없어 연주자들도 좋아하는 편이다.

메노티의 작품으로 국내 처음 상연된 것은 지난 62년 3월 서울대음대 오페라단이 국립극장무대에 올린 '전화' .그후 국립오페라단.김자경오페라단은 물론 각 대학오페라단에서 '노처녀와 도둑' '무당'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 '영사' '아멜리아 무도회에 가다' 등을 상연해왔다.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 은 예울음악무대가 오는 8일부터 12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김자경 오페라단은 88서울올림픽문화축전을 위해 만들어진 '시집가는 날' 의 초연악보를 일부 수정해 내년 5월 창단 30주년 기념작품으로 재상연할 계획이다.

87년 김자경오페라단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메노티는 한국적인 소재의 오페라 작곡을 위촉받았다.

작곡료는 10만달러. 이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은 88올림픽 문화축전 개막일에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서울시립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됐다.

'노처녀와 도둑' (1939년) 은 NBC의 위촉으로 라디오 방송용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오페라. '무당' (1946년) 은 '전화' (1947년) 과 함께 메노티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히트작이다.

또 '영사 (領事)' 는 50년 퓰리처상.뉴욕연극비평가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오페라가 이미 죽은 (또는 죽어가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현대인의 취향에 맞지 않는 예술양식이라는 분위기였다.

메노티가 '전화' 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오페라팬도 뮤지컬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토스카니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발 한번만 관람해달라고. 토스카니니는 연달아 두번이나 극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자마자 입장권은 매진되고 말았다.

'전화' 와 '무당' 의 대성공은 오페라의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제시의 신호탄이었다.

그후 후배 작곡가들이 하나씩 둘씩 오페라에 매달렸다.

메노티의 오페라는 한결같이 대도시 빈민가의 불우한 시민들의 황폐한 삶과 현대인들이 겪는 내면적 갈등, 그리고 가족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그의 인생관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갈만큼 큰 방이 있는 대저택에서 새를 키우고 조각과 그림을 수집하면서 호화스럽게 살았지만 미국과 이탈리아의 문화교류를 위해 막대한 돈을 내놓았고 가난한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음악가들의 성 프란시스' 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부유한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밀라노 스칼라극장을 옆집처럼 드나들었던 그는 20세기를 살았지만 보수적인 음악성향의 소유자다.

그의 오페라는 아리아 위주의 구성은 아니지만 노래 선율이 음악을 이끌고 나간다.

그래서 '아말…' 은 쉬운 온음계로 되어 있어 20세기 오페라 중 가장 널리 상연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