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말레이시아, 우량기업도 부실 도미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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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말레이시아 정부가 경제기반 강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부실기업 정리작업이 금융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우량 기업들에게 부실 기업 인수를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와 관련된 우량 기업들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국내외 주식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 주가가 연일 폭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19일 말레이시아의 간판 기업중 하나인 유나이티드 엔지니어스 말레이시아 (UEM)가 경영상태가 부실한 모기업인 레농사의 최대 주주가 된 것. UEM은 레농의 지분 32.6%를 23억4천만 링깃 (약 6억7천1백만 달러)에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된 동시에 레농의 부채 41억2천만 링깃을 떠안았다.

레농 인수 소식이 주식시장에 알려진 지난주부터 UEM의 주가는 투자자들의 실망 매물이 쏟아지며 무려 53.6%나 떨어져 지난 20일 2.90 링깃을 기록했다.

UEM의 이같은 주가 폭락은 말레이시아 경제에 대한 위기감을 증폭시키며 외국 투자자들의 투매를 불러일으켜 콸라룸푸르 주식시장은 이 기간중 19.5%나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공포감을 느낀 것은 두 회사의 주식거래가 명백히 증권거래법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이 이를 승인했다는 점이다.

증권거래법은 상장 주식중 5% 이상의 지분 변동이 생길 경우 주식매매 내역 및 최대 주주 변동상황을 공시토록 규정하고 있으나 두 회사는 이 규정을 어기고도 당국의 주식거래 승인을 받았다.

결국 UEM이 레농의 주식을 시장 가격보다 10%이상 높은 1주당 3.24링깃에 매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투자자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안와르 이브라힘 (얼굴) 재무장관이 진상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투자자들 사이엔 이번 일이 정부가 추진하는 부실기업 정리 방안의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며 조만간 다른 우량 기업들에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표적 우량 기업들인 겐팅.피트로나스 가스.마라코프.YTL 등의 주가가 연일 폭락하며 주가 급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 정부의 부실기업 정리정책을 최근 동남아 경제위기에서 빠져 나가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분석하고 있으나 이런 무리수가 자칫 현상을 더욱 악화시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만일 주식시장이 붕괴하면 우량 제조업체들마저 파산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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