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온정 바이러스’ 퍼트린 자장면 장학금 8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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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전북 전주의 자립형 사립고인 상산고에는 울릉도 섬마을 소년이 한 명 있다. 학원은커녕 PC방 하나 없는 오지에서 인터넷을 붙들고 공부해 자사고 입학의 꿈을 이룬 박민혁군이다. 그는 농어촌지역의 잠재력 있는 학생을 뽑는 상산고 입학사정관제의 첫 수혜자다.

그의 학교 통장에는 매달 2일 8만원이 입금된다. 계좌에는 입금자 이름도 없다. 민혁이는 공부에 매달리느라 ‘이름 없는 기부자’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부모가 용돈을 보내주듯 매달 같은 액수를 보내주는 이는 학교 근처 중국집 주인 이모(50·여)씨. 그는 중앙일보에서 민혁이의 기사를 읽고(본지 2월 14일자 1면) 감동해 민혁이를 돕기로 했다. 그리고 학교 측으로부터 어렵게 민혁이 계좌를 알아냈다. 매달 8만원을 보내는 이유는 민혁이를 아들처럼 생각하기로 했기 때문. 고3인 아들에게 주는 용돈과 똑같은 액수를 민혁이에게 보내주는 것이다. 그 정도면 민혁이가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속 깊은 뜻도 담겨 있다.

이씨는 “용돈을 주는 것 외에 더 많은 걸 챙겨주고 싶지만 부담을 느낄까 봐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혁이가 대학에 진학할 때 필요하면 등록금도 마련해주고 싶다”며 “얼굴은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씨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8만원의 사랑 장학금’은 교직원에게도 알려졌다. 상산고 이현구 교장은 “교사들도 큰 감동을 받았다”며 “민혁이 부모도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보일러공·전기공·정원사 등 학교의 기능직 직원도 후원자로 나섰다. 2월 말 십시일반으로 350만원을 모아 민혁이의 기숙사비로 써 달라며 학교 측에 전달한 것이다. 이 학교의 기능직 직원이 특정 학생을 위해 장학금을 모은 것은 처음이다. 한 직원은 “민혁이를 보니 힘들게 공부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상산고 홍성대 이사장은 “중국집 이씨와 학교 직원들의 정성은 수천만원, 수억원의 장학금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또 “작지만 큰 감동을 주는 사랑의 마음이 민들레 홀씨처럼 곳곳에 퍼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주=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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