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국회는 있어 뭐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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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도대체 국회가 뭣 때문에 있는 겁니까. " "외환위기는 구제금융으로 해결한다고 하지만 추락한 국제 신인도와 금융시장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겁니까. " 문민정부 마지막 정기국회 폐회일인 18일 낮 국회 재경위. 금융개혁법안의 처리여부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정부 관계자들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혹시나' 하며 걸었던 기대가 6분만에 끝난 회의와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회의는 13개 금융개혁 관련법안의 처리는 언급조차 않은채 이번 금융개혁내용을 삭제한 수정안을 담은 4개 법안만 표결로 처리한채 산회됐고 의원들은 쏜살같이 회의장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성원미달이 우려되니 이석 (離席) 을 자제해달라" 는 국회의장의 당부속에 열린 본회의는 처음부터 상대당 대통령후보를 비난하는 5분발언으로 일관했다.

성원이 계속 문제되자 김수한 국회의장은 "의장도 사람" 이라며 "안 나온 사람들이 문제" 라고 거듭 목청을 높였다.

영장실질심사제 축소문제를 두고 검찰과 법원간 마찰을 빚어온 형사소송법안을 처리해야할 법사위의 눈치보기도 나을게 없었다.

다만 이 법안 처리를 더이상 방치하다가는 엄청난 혼란과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는 여론등에 쫓겨 크로스 보팅 (당론에 따르지 않고 의원 개인 판단에 따라 투표하는 것) 방식으로 간신히 마무리지었다.

얄팍한 계산은 '금융개혁법안.추곡가 수매동의안의 내년 1월 임시국회 처리' 라는 3당총무들의 타협안에서 절정을 이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률안의 강행처리를 꺼려 쟁점이 되는 현안은 모두 내년 1월 임시국회로 떠넘겼다.

다소간의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금융시장을 혼란과 위기에서 구해내겠다는 국정운영에 대한 소신과 의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정과 민생은 내팽개쳐둔채 오로지 득표 계산에만 열을 올렸다.

공교롭게 이날 각당 후보들은 전국을 누비며 경제위기처방을 정부측에 촉구했다.

그들은 그러면서 한결같이 자신만이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구할 적임자라고 역설했지만 국회사정을 감안할 때 그들의 주장은 언행불일치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었다.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후보들이라면 왜 금융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법적 틀을 만들어주지 않는가.

책임있는 지도력이 절실하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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