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결벽증은 불안장애 일종…남에게 불편줄땐 치료받도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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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산에 사는 주부 정인숙 (35) 씨는 요즘 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아이가 혼자선 숟가락질이나 세수조차 안하려들어 고민이다.

문제는 그렇게 만든 책임이 전적으로 정씨에게 있다는 것. 처녀시절부터 유별난 '깔끔파' 였던 그는 아이 혼자서 밥을 먹으면 온통 흘리며 어지럽히는 것이 싫어 밥도 항상 먹여줬고, 세수도 제 혼자 하는 것이 맘에 안들어 일일이 씻어주고 닦아주고 했었다.

그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리라 생각 못했던 정씨는 이제 세살된 둘째 아이를 보며 난감할 뿐이다.

혼자 먹고 닦는 걸 보자니 속이 답답하고, 직접 해주자니 둘째 아이 버릇까지 망치게 될까 겁나고…. 닦고 또 닦고, 정리하고 또 정리하고, 집에 손님이 오면 바닥에 머리카락이라도 떨어뜨릴까봐 유심히 살피는 결벽증. 정신의학적으로는 '강박증' 이라고 부르는데, 성격이 원래 완벽주의거나 소심한 사람, 또는 신경계 일부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잘 나타나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각종 스트레스는 이 증세를 악화시키는 주범. 주부들에겐 가족간의 불화등은 물론 새집으로의 이사도 큰 스트레스로 작용해 하루종일 쓸고 닦느라 여념이 없게 만든다.

이 강박증이 심해지면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를 혹사해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홀로 되신 시어머니에게 "함께 살자" 고 제안했다가 "좋았던 고부사이 나빠질까 겁난다" 며 거절당했을 정도로 '깔끔증환자' 였던 주부 이영희 (47.서울양천구목동) 씨도 요즘엔 손가락 관절염 증세와 누적된 피로로 예전보다 청소에 매달리는 시간이 줄었다.

본인은 답답하다고 신세를 한탄하지만 주변 친지들은 집에 방문하기도 덜 부담스러워졌다며 오히려 좋아한다고. '병' 으로까지 진전된 강박증은 예전엔 고치기 힘든 난치병에 속했으나 최근엔 약물로 치료가 가능해졌다.

서울대 신경정신과 하규섭교수는 "몇년 전부터 보편화된 SSRI라는 약물이 아직까지는 부작용도 거의 없고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며, "남에게 불편을 주거나 스스로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증세가 심할 때는 즉시 병원을 찾아볼 것" 을 권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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