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그로부터 8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세기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차르체제 아래서 신음하던 러시아를 자유.정의.평등의 국가로 바꾸는 꿈을 꿨다.

그들은 당시 유럽을 풍미하던 사회주의에서 꿈의 실현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특히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에 심취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즉 레닌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에서 혁명의 씨앗을 발견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힘은 아직 미약했다.

그래서 레닌은 직업적 혁명가 집단인 볼셰비키를 동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1917년 러시아혁명은 혁명이라기보다 쿠데타라는 지적이 정확하다.

대부분 러시아 국민들은 혁명이 발생한 사실조차 몰랐다.

레닌은 하루라도 빨리 사회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혁명과업 수행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비밀경찰 체카였다.

체카엔 '혁명의 적들' 을 재판없이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1924년 레닌이 죽자 이 작업은 요제프 스탈린에게 넘겨졌다.

30년대 스탈린의 대숙청에서 정확히 몇명이 희생됐는지는 아직까지도 규명되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소련인 2천만명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으리라는 것이 정설 (定說) 이다.

이같은 비인간적 잔인성과 함께 소련 체제가 가진 또 다른 결함은 거짓과 낭비였다.

각종 통계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았다고 선전했지만 새빨간 거짓이었으며, 경제 효율을 무시한 자원의 무한정 낭비는 체제를 멍들게 했다.

이와 함께 인간으로서 자율성과 창의성이 무시된 호모 소비에티쿠스 (소비에트형 인간) 를 양산 (量産) 했다.

1985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내걸고 사회주의 부활을 시도했지만 이미 몰락의 길에 들어선 소련의 운명을 되돌리지 못했다.

91년 공산당 강경파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 소련의 운명도 함께 끝장났다.

러시아혁명 80주년이었던 지난 7일 모스크바 크렘린광장에선 지난날 화려했던 군사퍼레이드 대신 소련 시절로 복귀를 주장하는 소수의 공산주의 다이하드들이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모스크바 시민들은 냉소를 보냈다.

20세기 역사를 바꾼 대사건이었던 러시아혁명이 남긴 유산은 이처럼 보잘것없게 되고 말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