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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아날로그 음악 다 죽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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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 1980년대 초 '버글스'라는 그룹이 부른 이 노래는 TV라는 매체력과 기술력의 위세에 눌려 졸지에 무력해진 라디오 스타들의 비운을 연상케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야 할 노래는 '디지털이 아날로그 스타를 죽였다'이다. 디지털이라는 기술력 앞에서 아날로그 방식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재편되는 패러다임 속에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다. 그 중에서도 디지털의 최초.최대 희생양이 돼 버린 대중음악계는 완전히 초토화돼 재기 불능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어쩌면 머지않아 대한민국은 음악 없는 삭막한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순한 '엄살'이 아니다. 엄연한 사실이고 현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대중음악계를 둘러싼 갈등을 살펴보자. 아날로그 시대 음악업계의 주적이었던 불법 음반과 리어카상은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그리고 인터넷.MP3플레이어의 등장과 함께 불법 사이트와 불법 다운로드가 활개를 치더니 이제는 아예 음악을 반영구적으로 인코딩할 수 있는 MP3폰으로 이어지며 '음악은 공짜'처럼 인식돼 버렸다.

휴대전화에 MP3플레이어를 장착한 MP3폰은 결국 전 국민을 추악한 범죄자로 만드는 동시에 대중음악 업계의 파멸을 가져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음악인들이 그 실상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러자 이번엔 집단이기주의라며 몰아세웠다. 이것이 어떻게 집단이기주의란 말인가. 음악인들이 더 많은 부와 권리를 찾아보겠다는 욕심 때문에 거리로 나선 게 아니라 더욱더 원천적인 음악산업의 체제와 질서가 완전히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였다.

슬픈 얘기지만 지금 같은 현실이라면 음반제작자와 음악인들은 삶의 터전을 내팽개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실의 어려움에 절규하며 이 바닥을 떠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만약 당신이 막대한 자금과 시간.노력을 투자하고 피땀 흘려 음악을 만들었는데 누군가가 아무런 죄의식과 대가 없이 마구 훔쳐 즐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음악을 계속 만들겠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혹자는 음반시장 규모가 온라인으로 인해 더 커졌는데, 왜 죽는 소리냐고 하지만 그것은 음반업계를 잘 몰라 하는 얘기다. 외형적인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문화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2000년 국내 음반 시장 규모는 4104억원이었으나 2003년엔 1833억원으로 줄었고, 올해는 1000억원 안팎으로 줄 전망이다. 반면 컬러링과 벨소리 스트리밍 등 디지털 음악시장은 2000년 450억원에서 2003년엔 1850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불법 MP3' 등으로 대표되는 불법 디지털 시장까지 합치면 전체적인 디지털 음악시장 규모는 7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디지털 음악시장이다. 음반시장은 거의 바닥으로 떨어진 반면 디지털 음악시장이 커졌지만 기형적인 수익 분배구조 때문에 음반업계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디지털 음악시장의 70~80%가 불법이고 그나마 수익의 50%를 이동통신 업체가 가져가고, 20%는 컬러링 업체가 갖는다. 나머지 30%를 작사.작곡가 등 작품자와 가수.제작자가 나눠갖는 구조다. 디지털 음악 매출의 70%를 제작자 등이 가져가는 일본과 정반대의 분배구조다. 이러한 기형적인 분배시스템은 더 이상 음악을 생산할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었고, 급기야 많은 제작자가 두 손 들고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지금 음악 업계에서는 미래의 패권을 놓고 대기업의 저울질이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것은 분명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방증이다. 만약 불법 사이트와 불법 다운로드, 불법 스트리밍이 근절된다면 음악 업계의 미래가치가 1조5000억원에서 2조원에 이르는 시장 규모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밋빛 미래가치는 그야말로 가치로 끝날 수도 있다.

지금처럼 불법이 판치고 음악 소비자가 이를 편리, 혹은 편의주의에 입각해 자기 방식대로의 논리로 불법을 옹호한다면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는 물론 아날로그가 낳은 한류스타의 주역들이 디지털에 치여 모두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소비자들이 향유해야 할 대중음악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정부밖에 없다. 가수.제작자.작품자.이동통신업자.단말기 제조업자 그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정부의 의지가 그만큼 중요하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는 지적재산권 '우선감시대상국'에 올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중음악인들은 폭발 직전이다. 시끄러워져야만 그제야 관심을 기울이는 구태가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안정대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