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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막 내리는 ‘꽃보다 남자’ … 작가 윤지련에게 듣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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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초특급 판타지 로맨스 ‘꽃보다 남자’(KBS 2, 이하 ‘꽃남’)가 오늘 25회로 막을 내린다. 방영 석달 동안 ‘꽃남’ 없는 미디어와 시장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완소라마’(완전소중드라마). 일본 원작만화를 각색해 평균 시청률 30%대를 견인한 윤지련 작가가 보내온 후일담을 정리했다.

강혜란 기자

‘구금커플’로 불리며 사랑받은 구준표(이민호·左)와 금잔디(구혜선). 이별여행에 이은 이들의 러브 스토리는 어떻게 막을 내릴까. [사진제공 그룹에이트]


- 원작이 있는데도 결말을 둘러싸고 팬들의 성화가 끊이지 않았는데.

“25부 엔딩은 ‘닥본사’(본방송 시청)로 확인하시길. 난 소이정(김범)처럼 현실의 해피엔딩을 믿지 않지만, 드라마 속 해피엔딩은 보고 싶다. 개인적으론 뭔가 상상의 여지와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이 2%쯤 열린, 그런 설레고 긴장감 있는 엔딩을 원했다. 그렇지만 그건 내 취향이고, ‘꽃남’은 동화도 아닌 심지어 만화가 원작이니까.”

- 원작 만화를 원래 좋아했나.

“굳이 가르자면 카미오 요코(‘꽃남’ 원작자)보단 아다치 미츠루(스포츠만화 ‘H2’ 등)의 팬이다. 이런 사람이 하필 순정만화계의 바이블이라는 ‘꽃남’을 각색하게 된 것은 잔디의 말처럼 ‘꿈같은 인연’이랄 수밖에. 처음 각색을 제안 받았을 때 ‘로맨스물만이 아닌 성장드라마로 풀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 하에 승낙했다. F4 네 남자의 우정, 준표와 지후의 연적을 넘어선 형제애, 여자끼리의 진정한 ‘베프(베스트프렌드)’ 등을 보여주고 싶었다. 25부를 완주한 뒤, 서로가 서로로 인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기 바랐다.

- 일본·대만판이 있는 상황에서 부담은….

“그보다 힘들었던 건 순정 ‘만화’를 ‘드라마’로 변종시키는 일이었다. 판타지이면서도 리얼하게. 내가 선택한 길은 ‘로맨스는 판타지로, 갈등은 리얼하게’였다. 그 과정에서 일부 수단(왕따, 폭력 수위 등)이 불가피했다. 원작의 내용이 이미 상식화 되어 있던 시청층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말하면, 비겁한 변명일까.

- F4 역 배우들엔 만족하는가. 캐스팅 때 원작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봤는지.

“구준표(이민호)-윤지후(김현중)는 처음부터 원작의 츠카사-루이와는 다른 관계로 설정했다. 균형감을 이루며 팽팽한 삼각을 끌고 가려 했다. 두 배우는 원작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외모와 달리 본성은 예상 밖이었다. 거칠고 냉정한 준표를 맡은 민호는 다정하고 유쾌한 ‘소년’의 내면을 가졌고, 따뜻하면서 부드러운 이미지의 지후를 연기할 현중은 속 깊은 ‘어른’에 가까웠다. 그것이 대본과 연기에도 반영되면서 ‘우리만의 준표, 우리만의 지후’가 만들어져갔다.

-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지난해 8월 난생 처음 남산 케이블카를 탔다. 원작의 엘리베이터 신을 대체하기 위한 공간으로 염두에 두고 낙서할 자리, 얘기 나눌 위치를 다 확인한 채 내려왔다. 그런데 그해 12월 6일, 24년 만에 케이블카를 교체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12월 말 촬영 당일엔 체감기온이 영하 20도에 이르는 데다 바뀐 케이블카의 통유리가 촬영에 적합치 않아 포기할 뻔 했다. 가까스로 촬영을 마쳤지만, 십년감수했다.”

- 인기가 높아지면서 PPL(제품 간접광고)이 너무 많아 비난을 샀는데.

“‘꽃남 작가는 PPL 작가, 꽃남은 배우 빼곤 모두 PPL’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작가로서 안타깝지만 그 돈 받아서 F4 예쁜 옷 입히고, 고생하는 스태프들 간식 먹이니까…. 제작비 현실화가 앞서야하지 않겠나. 웃자고 몇 마디 고백하면, 라면은 처음엔 준표의 서민체험 일환으로 필요해서 썼던 건데, 공교롭게도 나중에 라면회사가 PPL로 참여해서 오해가 현실이 됐다. 퀴즈 하나 내자면 ‘꽃남’ 최초의 PPL 아이템이 뭘까? 정답은 4회, F4가 교복 입고 등교하는 장면에 등장한 막대사탕이다.

- 어쨌든 크나큰 사랑을 받으며 마쳤다. 차기작은 어떤 걸 준비하나.

“5할은 유전적으로 우월한 대한민국의 예쁜 배우들 덕분에, 5할은 그들을 맘껏 사랑해주신 시청자분들 덕에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완벽’보다 ‘완성‘에만 급급했던 아쉬움을 접고, 다음엔 판타지만 ‘하이’가 아니라 질도 ‘하이’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

◆윤지련은=1972년생. 2003년 MBC 베스트극장 극본공모에 ‘해치의 뿔’로 당선됐으며, 베스트극장 600회 특집 ‘그러나, 기억하라’(2004), KBS 2TV ‘반올림-시즌3’(2006~2007) 등을 썼다. 미니시리즈는 ‘꽃보다 남자’가 처음이다.



31일 화제 속에 종영하는 KBS2TV ‘꽃보다 남자’의 윤지련 작가가 25부를 완주한 소감을 보냈다. 윤 작가가 털어놓는 드라마 ‘꽃남’의 X파일.

# 순정만화

커밍아웃하자면, 난 순정만화의 광팬은 아니다. 굳이 밝히자면 ‘카미오 요코’(꽃보다 남자의 원작자)보단 ‘아다치 미츠루’(스포츠만화 H2 등의 만화가)의 팬이랄까. 그런 사람이 하필이면 순정만화계의 바이블이라는 &ltlt;꽃보다 남자&gtgt;를 각색하게 된 것은 잔디의 말처럼 참 ‘꿈같은 인연’이랄 수밖에. 각색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일본·대만 드라마와 비교당하는 것이 아니라, 순정‘만화’를 ‘드라마’로 변종시키는 일이었다. “판타지이면서도 리얼하게”.

위험하지만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것도 피하고 저것도 피하면서 안전하게 갈 것인가, 시청자가 이 작품에 기대하는 바를 보여주며 겪을 건 겪어야 할 것인가. 내가 선택한 답은 ‘로맨스는 판타지로, 갈등은 리얼하게’였다. 그 과정에서 선택한 수단들-왕따, 폭력 수위 등등- 에 대해 원작의 내용이 이미 상식화 되어 있다시피한 이 작품의 시청층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말하면 '사회적으로 올바른' 드라마를 써야하는 책임을 망각한 작가의 비겁한 변명이 될 터. 닥치고 죄송할 따름이다.

# 구준표와 윤지후 vs 이민호와 김현중

구준표와 윤지후는 시놉시스 단계부터 남자주인공 ‘츠카사’와 서브남주 ‘루이’의 포지션이 아니었다. 이들의 팽팽한 삼각을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 목표였고, 그러기 위해선 준표와 지후, 누구도 서로에게 밀리지 않는 균형감이 필요했다. 자칫 서브남주로 물러설 우려가 있는 지후 역에 가장 ‘핫’한 아이돌 김현중을 캐스팅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그런데 오디션을 하고, 대본연습을 시키며 배우들을 파악해 나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거칠고 냉정한 준표를 맡은 민호는 다정하고 유쾌한 어린 ‘소년’의 내면을 가졌고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의 지후를 연기할 현중은 속 깊은 카리스마를 지닌 어른‘남자’ 에 가까웠다.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하다는 외모의 씽크율과 매우 상반되는 두 배우의 본성은 결국 대본과 연기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만의 준표, 우리만의 지후가 만들어져가고 있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방영 전까지는 민호의 낮은 인지도와 현중의 연기력도 부담이었다. 그래서 초반에 준표에게 주도권을 주고 극을 끌어가게 하고, 지후에겐 뉴칼레도니아 이후부터 승부를 걸기로 작전을 짰다. 결과적으로 준표와 지후, 두 사람 모두 사랑해준 시청자들께 무조건 감사.

# PPL

‘꽃남 작가는 PPL 작가, 꽃남은 배우 빼곤 모두 PPL…’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작가로서 안타깝지만 그 돈 받아서 F4 예쁜 옷 입히고, 고생하는 스태프들 간식 먹이니까…. ‘제작비 현실화’ 이런 말 각설하고 이것도 닥치고 죄송.

그래도 웃자고 몇 마디 하자면 ‘라면’은 정말 시놉시스부터 준표의 서민체험 일환으로 필요해서 썼던 건데 -어묵처럼 말이다!- 공교롭게도 나중에 라면회사가 PPL로 참여해서 오해가 현실이 됐던 억울한 상황. 라면회사는 아무런 요구사안도 없이 좋아만 했다는 후문. 말해 뭐하나. 누가 PPL 신을 그렇게 세게 써줘. 전개상 필요해서 썼을 뿐이고, 우리 준표는 CF처럼 맛나게 먹어줬을 뿐이고. 잔디와 지후가 나눠먹는 우유와 커피는 PPL이 아니었다는 걸 외치고 싶을 뿐이고. 여기서 퀴즈 하나! &ltlt;꽃보다 남자&gtgt; 최초의 PPL 장면 아이템은? 정답은 4회, F4가 교복 입고 등교하는 장면에 등장한 막대사탕 ‘츄파춥스’^^

# 케이블카에서 생긴 일

원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안이 거의 전무한 전례 없는 상황.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배우만 바꿔 보여준다는 것에만 만족할 순 없었다. 우리의 배우들이,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도시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기에.

작년 8월.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저녁, 난생처음 남산 케이블카를 탔다. 엘리베이터 신을 대체하기 위한 공간으로 염두에 두고 동선확인을 위해 타 본건데, 서울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남산이 그렇게 예쁜지 첨 알았다. 혼자 뻘쭘하게 준표의 계산에 따르면 ‘3만6천3백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잔 마셔주고, 낙서할 자리며 토크할 위치며 다 확인한 채 기쁘게 내려왔건만. 2008년 12월6일. 24년 만에 케이블카 교체했다는 뉴스가 불길하게 내 눈을 후벼 팠다.

12월 말, 케이블카 촬영당일. 이번엔 체감온도 영하20도의 강추위가 몰아닥치는 겨울밤. 살인적인 추위에 차마 대본 대로 준표에게 비를 뿌려달라는 주문은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고. 케이블카 확인하러 직행. 어째서 이런 불길함을 빗나가질 않는지. 바뀐 케이블카의 통유리가 너무 세련된 각도라서 촬영 불가라 하심에 절망. 울며 수정 신 쓰는 와중에 어찌 어찌 가능할 것 같다는 낭보에 다시 급 화색. 24년만의 남산케이블카 교체 소식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엉뚱한 1인 여기 있습니다!

# 성장드라마

순정 만화광이 아닌 자격미달의 작가가 '꽃보다 남자'를 그래도 해볼까, 마음을 먹게 된 이유. 난 청춘들이 좋다. 학원물도 좋다. 정확히 말하면 고교시절부터 대학졸업 이전의,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과 동경을 지닌, 그러면서도 아직은 사회의 통념과 불의에 물들지 않은 어리석고 위험한 아이들의 들끓는 순수함을 사랑한다. “꽃남을 해주실래요?”라는 제안에 “로맨스물만이 아닌 성장드라마로 풀 수 있게 해주면요.”라고 조심스런 승낙을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닭살대사와 알콩달콩 데이트로 점철된 짝짓기가 아닌 F4 네 남자의 우정, 준표와 지후의 연적을 넘어선 형제애, 여자들에게도 진정한 ‘베프(베스트프렌드)’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가을과 재경을 그리는 데 더 공을 들였다. 철부지 재벌도련님들에게 각자 트라우마를 지워주고, 잔디에게는 수영과 의사라는 꿈을 심어주면서 출발선에 세웠고. 그들 모두가 24부를 완주한 다음엔 서로가 서로로 인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기를 바랐다.

# ‘하이 판타지 로망스’ '꽃보다 남자'의 해피엔딩

‘그래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해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엔딩은 드라마가 아니다, 동화지. 그래서 그런 엔딩은 피해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ltlt;꽃보다남자&gtgt;는 동화도 아닌 만화다. 그것도 순정만화를 옮긴 ‘하이 판타지 로망스’ 드라마란다.

난 이정이처럼 현실에서의 해피엔딩을 믿지 않지만, 드라마 속의 해피엔딩은 보고 싶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인 내가 원하는 해피엔딩은 무언가 상상의 여지와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이 2%쯤 열린, 그런 설레고 긴장감 있는 엔딩이다. 그렇지만 그건 그냥 내 취향이 그렇다는 거고. '꽃보다 남자'의 25부 엔딩은 ‘닥본사’로 확인하시길.

꽃남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작품이 됐다. 5할은 유전적으로 우월한 대한민국의 예쁜 배우들 덕분일 것이고, 나머지 5할은 그들을 맘껏 사랑해주신 시청자분들의 너그러움 덕분이다. 예쁜 배우들 데려다 부족한 대본으로 만든 드라마 보시느라 석달 동안 욕보신 꽃남 팬들께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완벽’보다 ‘완성‘에만 급급했던 아쉬움을 가슴에 새기고, 다음엔 판타지만 ‘하이’가 아니라 퀄러티도 ‘하이’인 작품을 만들도록 닥치고 노력!

- 2009.3. KBS 미니시리즈 '꽃보다 남자' 작가 윤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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