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라크위기 공조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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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라크가 또다시 불집을 건드리고 있다.

유엔 무기사찰단에 포함된 미국인의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 위기를 불러 걸프 근방에 전쟁분위기가 감돌게 된 것이다.

미국정부가 군사공격 가능성까지 들먹이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사일과 핵무기를 비롯, 생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있던 것도 폐기하기로 유엔과 약속해 놓고 그 보유 여부에 대한 사찰활동을 방해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응징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이라크는 미국이 유엔활동을 빙자해 스파이활동을 하고 있다며 자기네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현상일뿐 이라크의 행동은 나름대로의 계산에 따른 것이다.

우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7년전 쿠웨이트 침공때와는 달리 미국의 정책이 국제적 지지를 받지 못하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얼마전 유엔안보리 (安保理)에서 이라크 관리의 여행을 국제적으로 규제하자는 미국의 제안이 러시아를 비롯, 중국과 프랑스의 반대로 좌절된 예가 있어 이러한 틈새를 이용하자는 생각이다.

특히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이라크 국내는 물론 이슬람 세계에서 후세인 대통령 개인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삼자는 정치적 계산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위기를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결보다 미국과의 대결로 부각시킴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자는 속셈이다.

실제로 후세인 대통령은 쿠웨이트 침공에 따른 군사적인 패배는 물론 유엔의 경제제재조치를 당해 궁지에 몰려 실각하는 것이 당연시됐지만 오히려 국민적 영웅에 이슬람 세계의 상징적 인물로까지 떠받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독자적으로 군사적 행동에 나서는 것은 후세인 대통령의 의도에 이용당하는 측면이 크다.

이슬람 세계에 반미 (反美) 감정을 부추기고 유엔안보리국가들도 분열시켜 평화와 안정이 오히려 위협받을 가능성도 크다.

그런 위험을 줄이려면 국제적 공조를 통한 해결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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