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은 돈 다시 증시 기웃 … 국경도 넘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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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겁이 많기로는 돈을 따라갈 만한 것도 없다. 지난해 금융위기가 닥치자 돈은 전 세계 주식시장과 회사채는 물론 원유 등 상품에서 일제히 빠져나가며 자산 가격을 폭락시켰다. 대신 잃을 염려가 적은 달러와 금에 몰렸다.

하지만 최근 금융위기가 해빙 조짐을 보이면서 ‘돈의 긴장’도 서서히 풀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돈이 다시 주식·상품 등으로 흘러들어가며 ‘유동성 랠리’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점점 커지고 있다.

25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7.32포인트(0.60%) 상승한 1229.02로 마감했다. 연중 최고치였던 1월 7일의 1228.17을 두 달 보름 만에 넘어선 것이다. 증시가 호조를 보이면서 원화가치도 역시 두 달여 만에 1360원대를 회복됐다.

금융위기 이후 번번이 실패했던 1200선 안착을 전망하는 목소리도 늘었다. 그 중요한 근거가 극단적으로 치닫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풀리고 있다는 점이다. 곽병렬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상품 가격 반등은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라며 “코스피도 1200선에 안착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증시로 들어오는 자금도 서서히 늘고 있다. 주식시장 고객예탁금은 지난달 말 10조6500억원에서 24일 현재 11조7800억원으로 늘었고, 주식형 펀드 잔고도 같은 기간 1조2400억원 증가했다. 외국인들도 최근 7거래일째 국내 주식을 사들이며 지수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다.


교보증권 주상철 투자전략팀장은 “그간 돈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건 금융 불안”이라며 “최근 미국이 내놓은 금융사 부실자산 처리 대책의 효과를 놓고 논란도 있지만 불확실성은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긴장이 풀린 돈이 다시 본격적으로 국경을 넘나들기 시작할 것이란 낙관적 예상도 나온다. 저금리 국가에서 고금리 국가로 돈이 이동하는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다.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전 세계에 풀린 달러·엔 자산은 급격히 본국으로 회수됐다. 한국이 ‘달러 가뭄’에 빠진 이유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의 금리는 사실상 제로 상태에 놓여 있다. 미국의 경우 단기 금리뿐 아니라 장기 금리까지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극단적인 불안만 해소된다면 더 이상 안전자산에만 머물 형편이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투자증권 황나연 연구원은 “안전자산의 기대수익률이 낮아지는 반면 위험자산은 그간 과도하게 하락해 기대수익률이 높은 상황”이라며 “최근 유가 상승도 원유 수요가 늘었다기보다는 수익을 노린 투자 자금이 몰린 탓”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계론도 여전하다. 경기 침체라는 변수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황금단 연구원은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주식시장은 견고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추가 상승의 폭과 강도를 좌우할 변수는 1분기 국내외 기업의 실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동성 장세가 온다면 가장 득을 볼 종목으로는 흔히 ‘트로이카’라 불리는 은행·증권·건설이 꼽힌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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