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주유하면 이익 … ‘유테크’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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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교량·터널의 안전 상태를 진단하는 업체인 남양 E&C의 한재현(31) 과장은 업무상 장거리 출장이 잦다. 한 달이면 자동차 주행거리가 2000㎞가 넘는다. 그래서 한씨는 기름값에 민감하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차에 싣는 짐을 줄이고 급정차나 급가속을 하지 않는다. 특히 출근을 서둘러 새벽에 기름을 넣고 있다. 기름 성질상 온도가 높으면 부피가 팽창하고 기온이 낮으면 수축되기 때문이라는 게 한씨의 설명이다. 한씨의 이런 새벽 주유 습관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까.

◆온도에 따라 차이 나는 주유량=한국표준과학연구원 임기원 박사는 “휘발유는 섭씨 1도 오르고 내릴 때 0.11% 정도로 부피가 늘거나 준다”며 “경유도 0.09% 정도 변한다”고 말했다. 한씨가 휘발유 1L에 1500원을 받는 주유소에서 한 번에 3만원어치(20L)를 넣는다고 치자.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일교차는 10도 정도였다. 따라서 하루 중 온도가 가장 낮을 때와 가장 높을 때 휘발유의 부피 차이는 0.22L가 된다. 20L에 온도 차이에 따른 변화율인 0.11%를 곱하고 다시 온도 차인 10을 곱해 나온 값이다. <그래픽 참조> 따라서 가장 기온이 높은 낮에 넣는 것보다 기온이 가장 낮은 새벽에 넣음으로써 330원(0.22L×1500원)이 절약된다. 한 달에 30만원어치를 주유한다면 3300원을 아낄 수 있다. 1년이면 3만9600원이 절약된다. 기름값이 올라가거나 기온 차가 커질수록 액수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주유소의 입장으로 바꿔보면 꽤 큰 금액 차이가 난다. 서울 방배동 방배역 4거리에 있는 A주유소가 한 달 동안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휘발유 양은 20만L 정도라고 한다. 최고기온과 최저기온만 따지면 이 주유소는 기온 차이에 따라 단순 계산으로 한 달에 330만원의 추가 이익이나 추가 손해를 볼 수 있다. 또 정유사도 기온 차이에 따라 엄청난 이익이나 손실이 정해지는 셈이다.

◆기름 온도보정 필요성 제기=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민주당의 최철국 의원이 전국 1만1070개 주유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6.3%가 정유사에서 석유제품을 공급받을 때 온도에 따라 변하는 부피만큼을 상계해주는 ‘기름 온도보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 주유소는 일반 소비자에게 팔 때도 기름 온도보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한 곳은 45.5%로 불필요하다(35.7%)는 입장보다 많았다.

정유업계와 정부는 그동안 정유사에서 제품을 공급받을 때 온도에 따라 변하는 부피만큼을 상계해주는 온도보정의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한석유협회 주정빈 홍보부장은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1년 평균 온도가 섭씨 13.7도 정도로 기름 부피의 기준이 되는 섭씨 15도를 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본부 임기상 대표는 “대부분의 운전자가 주유를 낮 시간에 하기 때문에 낮 평균 기온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균 일교차가 10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낮 시간에는 평균적으로 15도가 넘기 때문이다. 또 기온이 높은 남부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소비자들은 같은 양의 기름을 넣고도 더 많은 돈을 내는 셈이라는 게 임 대표의 지적이다.

이미 관공서·군부대·공공시설 등에 거래할 때 정유사들은 100% 기름 온도보정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주유소에 석유제품을 팔 때 온도보정을 고려하는 경우는 30%정도다. 더구나 주유소에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온도보정을 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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