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걱정되는 '상암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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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02년 어느 가을 밤. 서울상암동에서 열릴 '월드컵 축구 개막전' 을 상상해보자. TV 앞에 모인 전세계 10억 축구인의 눈에 비친 서울 모습은 도쿄 (東京) 의 밤 모습과는 영 딴판, 아파트단지 일색이다.

게다가 바로 옆 쓰레기매립장은 '안정화사업' 을 했다지만 경기 내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6만5천여 관객이 치른 곤욕은 말도 못한다.

경기장까지 오는 지하철은 10량을 가득 채워도 수용능력이 기껏 2천여명. 서울시내 환승역마다 하루종일 북새통이었지만 정작 몇명 나르지도 못했다.

택시를 잡느라, 버스노선을 알아보느라 시간만 보내다 할 수 없이 승용차를 몰고 나선 사람들은 또 성산대교 부근에서 꼼짝할 수 없어 결국 제시간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경기 후엔 더했다.

앞다퉈 몰린 사람들로 지하철 승강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한꺼번에 떠난 승용차로 자유로는 금방 주차장이 돼버렸다.

상암동 전용구장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에서 열릴 2002년 월드컵경기는 고작 서너번. 월드컵이 끝나면 그 넓은 관중석을 채울 경기가 1년에 몇차례나 될지 궁금하다.

축구는 물론 다른 경기도 하는 잠실종합운동장도 연간 이용일이 60여일에 불과하다.

'축구전용으로 운영비나 제대로 나올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게 당연하다.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자리를 "교통 혼잡, 입주상인.주변상가.야구인 등의 반발 때문에 안된다" 며 내주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동대문엔 지하철 1, 2, 4, 5호선이 서울을 사방팔방으로 관통하고 버스.택시 등 보조교통수단도 다양하다.

무슨 교통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건설비는 상암동보다 1천3백억원이나 싸다.

뿐만 아니라 잘하면 돈을 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벌 수도 있다.

운동장 지하를 개발해 쇼핑몰.주차장을, 스탠드 밑엔 음악당.물류센터를, 청계천 의류시장은 패션거리로, 경기가 없을 때는 운동장을 야외공연장으로….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입주상인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더불어 동대문 주변엔 서울의 풍물이 풍성하다.

'진짜 서울' 을 외국인에게 보여줄 기회도 되는 것이다.

상암동을 동대문운동장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면 올림픽경기장 같은 유휴시설을 또 하나 짓는 우 (愚) 라도 피해야 한다.

주변지역을 '복합적' 으로 개발해 시민의 삶이 어우러질 수 있는 새로운 도시공간을 창조하는 혜안이 중요하다.

음성적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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