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가'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미군부대 주변에서 하나둘씩 흘러 나오던 시가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69년. '한강' 이라는 이름의 제품이 국내 생산되면서부터다.

일반담배 길이와 비슷한 (8.4㎝) 이 시가는 애연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40대 이상이라면 재미삼아 한두번 시가를 피워본 기억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당시 반응은 거의 “뭐, 이렇게 독해?” 한마디. 국산 시가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가 88년 '연송' 을 끝으로 퇴장했다.

“소비자의 기호와 너무 동떨어져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었다” 는 게 한국담배인삼공사측의 얘기다.

어찌보면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가 흡연법에 익숙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일이다.

시가는 담배처럼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는다.

이른바 '뻐끔이 담배' 같이 입에 연기를 머금고 있다가 코나 입으로 다시 내뱉는다.

그러면서 연기에 묻어 나오는 독특한 향을 음미하는 식이다.

그래서 시가의 경우 향을 으뜸으로 친다.

담뱃가루에 순화제등의 화학물질을 섞지 않고, 종이 대신 이파리로 싸는 것은 그 때문이다.

원료의 질에 따라 향이 다르니 당연히 값도 제각각. 불을 붙이지 않은 시가를 물고 있는 것을 '괜한 멋내기' 로 간주하는 것도 오해다.

사실 그건 다른 사람에게 독한 연기의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향기를 즐기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시가 애호가가 느는 추세다.

외국생활 경험자가 많아진 것이 한 요인이다.

네덜란드산 제품을 수입.판매하고 있는 한국 로스만스 (주) 측은 올해 12억원 정도인 시장규모가 매년 두배 가까이 늘어나 2천년엔 1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 회사 황규연 부장은 “최근 일본에 애호가가 급증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서울시가클럽' 등 동호인 모임이 결성되는 점으로 미뤄 머지않아 본격적인 시가 시대가 열릴 것” 이라고 말한다.

수입담배와 힘겨운 한판 싸움에 이어 이제 수입시가와의 결전의 날이 다가서고 있는 것일까. 젊은 여성이라고 마음 놓을 일이 아니다.

외국의 시가 메이저들은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같이 선이 굵은 남성을 내세운 마케팅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전세계 동호인들과 쿠바시가 향을 나누려는 네티즌들 역시 인터넷 홈페이지마다 빙어처럼 날렵한 손가락을 가진 미인회원을 대표선수로 내세워 유혹중 - .

강주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