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마음을 잡아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방미 화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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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민의 마음을 파고 들어라. 그리고 중국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시켜라. " 장쩌민 (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26일 (이하 현지시간) 미국 국빈방문을 시작하며 내건 화두 (話頭) 다.

중국은 그만큼 江주석의 방미일정을 하나하나 이에 맞게 세밀히 계획,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江주석은 26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 1941년 당시 일본군의 공격에 희생당한 미군묘역에 헌화하는 것으로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정계 관측통들은 이 행사가 지난달 미.일간에 발표된 신방위협력지침 (가이드 라인) 을 염두에 둔 행보라고 해석한다.

이어 미 본토로 들어가 첫방문지를 미국인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역사의 고도 (古都) 윌리엄스버그로 잡은 것도 미국민들의 관심과 마음잡기를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江주석은 29일 워싱턴을 방문해선 백악관 뒤편의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 묵을 예정이다.

요즘 워싱턴을 찾는 외국정상들은 국빈방문일 경우에도 이곳이 다소 좁다는 이유를 들어 기피하지만 江주석의 경우는 다르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중국은 국빈' 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시키겠다는 계산이다.

특히 중국측은 이번 江주석의 방미를 18년전의 덩샤오핑 (鄧小平) 방미 때와 '똑같은 수준' 으로 예우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 백악관측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예컨대 미측은 오는 수요일로 예정돼있는 백악관 공식만찬에 가능한한 많은 인원 (약 4백명) 을 초대하기 위해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특설 만찬장을 꾸밀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국측은 鄧때의 만찬장이었던 이스트룸을 고집, 백악관측은 좁은 장소에 맞게끔 초대 인사를 추려내느라 곤욕을 치렀다.

또 공동기자회견자리도 鄧이 회견을 가졌던 자리로 잡혔다.

29일 정상회담, 미공영방송 (PBS) 과의 인터뷰에 이어 30일에는 미국건립의 유서깊은 고장이자 장남인 민캉 (民康) 이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필라델피아의 드렉셀대학과 독립기념관을 찾는다.

그뒤 뉴욕.보스턴.로스앤젤레스등에 들러 지역지도자들과 만나기로 돼있다.

江주석의 이같은 분방한 일정은 미국내 인권및 종교단체들의 좋은 시위대상이 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측은 이같은 '수모' 에 정면으로 맞대응하겠다는 각오다.

기왕에 부딪칠 일이라면 미국의 주요도시에서 정정당당하게 마주칠 것이며 아울러 곳곳마다 준비된 메시지를 던져 미국민들의 마음속에 중국에 대한 정당한 인식을 심겠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워싱턴 = 김수길.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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