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 또 불사…멍드는 산문…주변경관·사찰분위기 해치기 예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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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전북 김제군의 고찰 금산사. 백제시대부터 내려오는 절이기 때문에 국보 제62호 미륵전.보물 제25호 오층석탑등 문화재도 많고 각종 불사도 끊이지 않는다.

이 절을 자주 찾는 관광객들은 최근 미륵전에서 오층석탑에 이르는 10m높이의 언덕을 뭉개버리고 석탑을 화강암으로 둘러싸는 공사를 보고는 한결같이 절분위기를 망쳤다고 혀를 찬다.

사찰환경과 문화재보존 등을 무시한 불사 (佛事) 의 대표적인 사례다.

금산사만이 아니다.

현재 진행중인 사찰의 불사를 보면 걸핏하면 초대형이고 그런 규모를 위해서라면 주변경관이나 사찰환경, 문화재보존 등이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요즘 불사치고 중장비가 동원되지 않는 예가 드물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목재였던 사찰에 신축되는 건물들은 거의가 돌.시멘트.대리석으로 짓고 있어 고즈녁한 사찰 분위기를 깨뜨리고 있다.

원효스님이 터를 잡고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대둔산 깊숙한 곳의 태고사도 불사로 사찰분위기를 해쳤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대웅전 앞쪽에 10년 가까이 짓고 있는 요사채가 석조여서 이 절에서는 더이상 옛날의 은은한 분위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지는 경북 봉화군 영취산에 자리잡은 취서사. 역시 요사채 공사를 하느라 깊은 산중에 축대를 1백m정도 쌓고 있으니 완공후 이 절의 분위기가 어떨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수덕사의 여승' 이라는 노래를 타고 호젓한 절이란 이미지가 강했던 수덕사도 불사로 이미지에 흠집을 낸 절로 자주 거론된다.

80년대 중반 황화루라는 누각을 짓고 인공연못까지 조성했다가 누각이 대웅전을 누르는 흉물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94년 그것을 허물어버리고 지금은 다시 건물을 짓는 불사를 진행중이다.

지난해 조계종 총무원의 신개축허가를 받은 불사만도 은해사의 성보박물관 신축 등 26건. 이 불사들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개악' 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불교문화재에 관심이 높은 김장호 동국대 명예교수는 "절은 자연과 하나가 되도록 가꿔야 한다" 며 "불사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예전처럼 목욕재계까지는 곤란하다해도 그만한 정성을 기울인다는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고 말했다.

예전에는 팔만대장경의 경우에서 보듯 불사에는 신앙심과 공덕이 바탕이 되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들어 물신주의가 팽배하면서 신앙심과 공덕까지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불사는 걷잡을 수 없이 물량주의로 치달았다.

불사란 부처님의 뜻을 널리 펼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대중을 교화하고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는 일 등이 모두 불사이지만 그래도 대중교화가 으뜸 불사가 돼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현실은 불사하면 대형공사로 통하고 대중교화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이렇게 되자 불교계 최대 종단인 조계종에서는 불사의 경우 재산상의 변화 뿐 아니라 자연경관과 문화재 보호의 측면까지 고려해서 엄격히 심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불사심의기구의 구성을 서두르고 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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