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명문 못 키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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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고-전주’, ‘한일고-공주’. 학교명이 도시를 연관 짓게 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고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국 외고·과학고와 견줄 정도의 대입 진학성과를 거두면서 매년 우수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과거 지역을 구성하는 한 요소에 불과했던 고교가 최근에는 지역을 선도하면서 ‘대표 브랜드’로 자리를 잡고 있다.

 충남 공주 산골마을에 위치한 한일고. 최근 10년 간 서울대에 115명을 보냈다. 대전·충남 권에서 대전외고·유성고·충남고 등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올해도 서울대 10명을 포함해 연·고대까지 70여 명(졸업 142명)을 합격시켰다. 이 때문에 개교 20여 년을 갓 넘긴 한일고는 공주는 물론 충남을 대표하는 명문고로 인정받고 있다.

 2003년 3월 자립형사립고 전환 이후 명문고 반열에 오른 상산고. 전주에는 10년 간 100명 이상을 서울대에 보낸 전통의 전주고가 버티고 있지만 ‘전주를 대표하는 고교’가 상산고로 바뀐 지 오래다. 상산고는 2009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33명, 연·고대 170명 등 3개 명문대에 203명(중복합격자 포함)을 합격시켰다. 1개 학년 정원이 38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2명 중 1명은 서울대, 연·고대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두 학교의 성공비결은 인재유치다. 자립형사립고로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학교 측은 인재 영입을 위해 바다도 건넌다. 올해 상산고는 동해바다 건너 울릉도에서까지 인재를 선발했다. 교사가 직접 가서 학생을 평가한 뒤 뽑았다.
학교를 빛낼 인재영입을 위해서라면 오지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게 두 학교의 방침이다.

 천안·아산도 개교 40~50년이 넘는 학교들이 많지만 지역을 대표하기엔 역부족이다. 고교야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 천안은 북일고 덕분에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북일고를 ‘야구 잘하는 학교’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고교야구 인기가 시들면서 겨우 이름이나 기억하는 정도다. 천안고·천안중앙고의 인지도는 더 낮다. 세 학교 모두 명문고라는 명함을 내밀기조차 어렵다.

 교육계에서는 천안·아산지역 고교 중 하나를 상산·한일고 못지 않은 명문고로 만들자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복자여고다. 복자여고는 매년 100명 가량을 서울 소재 상위 8개 대학에 보낸다. 올해도 서울대, 연·고대 성균관·한양·서강·중앙·경희·이대에 77명을 보냈다. 2010년 대입에서도 이들 대학에 100여 명 이상을 보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복자여고는 매년 신입생 선발에서 최고 수준을 낸다. 올해 신입생 선발에선 200점 만점에 175점이 커트라인이었다. 매년 합격선이 170점 가량일 정도로 우수인재들이 몰린다. 서산·태안·보령에서도 매년 3~4명씩 학생들이 온다. 모두 전교에서 5등 안에 드는 학생들이다. 복자여고라면 타향살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장복수 복자여고 교장은 “천안에 있는 중학생들이 복자여고 교복을 입는 것을 꿈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명문고라면 남고를 떠올리지만 여고도 충분히 천안을 대표하는 명문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교 2년째를 맞은 충남외고도 명문고 대안으로 꼽힌다. 올해 신입생 40% 가량이 수도권 학생일 정도로 우수인재가 입학, 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2012년 입시가 기대된다. 현재 2학년들이 지난해 치른 두 번의 학력평가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도 이 같은 기대를 갖게 하는 이유다. 권오철 충남외교 교장은 “단순히 대입실적을 명문고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하지만 학교의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한 마음으로 뭉친다면 명문대 진학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학교를 명문고로 육성하기 충남도·충남교육청·천안시·대기업 등에서 장학금·대학입학금 지원 등 학생들을 붙잡을 지원책도 필요하다. 타지의 자사고로 유출되는 인재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문회에서도 나서 장학금지원·기숙사 확장 등 협조체계 구축, 인재확보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천안시가 지원한 교육비는 147억 원. 올해는 168억 원으로 19억 원이나 늘었다. 하지만 예산 가운데 장학금이 5억 원에 불과하다. 이를 더 늘려 인재의 타지유출을 막아야 한다. 아산시도 상위 5%의 중학생이 지역 고교로 진학할 때 20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인재유출을 막아 지역고교를 명문화시키겠다는 취지다. 경남 합천의 경우 ‘교육이 강한 도시 만들기’를 역점시책으로 정하고 사교육비 절감과 학력증진을 이끌어냈다. 대도시 기숙학원에 뒤지지 않는 시설 확충과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인재유출을 막고 외지의 인재까지 끌어들였다. 4월 치러질 충남교육감 선거에 출마 예정인 한 후보는 “지역에 장학재단을 설립해 우수학생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지역 인사들이 모여 명문고를 육성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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