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야생꽃 향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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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양이 '식물성 문화' 라면 서양은 '동물성.광물성 문화' 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여러가지 자연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알프스산맥 서쪽인 프랑스.영국.독일.네덜란드 등 지역엔 산다운 산이 없어 식물의 종류가 아주 적다는 점을 꼽는다.

아닌게 아니라 그 일대의 식물은 고사리 종류인 양치식물을 포함해 겨우 1천5백종 정도인데 비해 우리나라만 해도 5천종을 헤아릴 수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한데 식물 특히 꽃에서 원료를 추출하는 향수 산업이 일찍부터 서유럽 쪽에서 번창한 까닭은 무엇일까. 동물성 중심의 의생활.식생활 탓이다.

고기를 저장하거나 말릴 때 향료를 쓰면 부패를 방지하거나 악취를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털옷.가죽옷을 입었을 때 살냄새와 뒤섞여 발산하는 고약한 냄새도 향료로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것이다.

그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외국에서 향료가 될만한 식물이나 꽃을 대량 수입해 정성스럽게 재배하고 품종 개량에도 앞장섰다.

그래서 향수의 원료가 되는 꽃중 원산지가 서유럽인 꽃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의생활.식생활에 긴요하게 쓰였던 향료가 화장품용 향수로 변모해 산업화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후반부터의 일이다.

최초의 향수는 1573년 영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시기인 샤를 9세때 왕족들이 남부지역에서 대거 원예사업에 뛰어들었고 그때부터 향수 하면 으레 프랑스를 떠올리게 됐다.

향수가 내뿜는 향기의 종류는 플로럴.그린.우디.셰르프.오리엔탈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원료가 되는 꽃이 모두 다르듯 신분.나이.성격.취향 등에 따라 쓰임새가 각각 다른데도 어지간한 계층이 아니면 대개는 즉흥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지역과 민족에 따라 향내에 대한 취향도 다르다는게 정설이다.

우리 민족도 예부터 향을 즐겨 썼는데 가장 유행한 것이 난초와 매화였다.

우리 민족의 성격과 취향에 맞는 '은은하고 그윽한' 냄새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구적 현대화에 물들기 시작하면서 서양식 향기가 향수의 주축을 이뤄왔다.

전남구례군이 지리산의 야생화중 특히 향기가 좋은 옥잠화.원추리꽃에서 향을 추출해 향수 등 화장품을 개발했다고 한다.

진정한 '우리의 향기' 일 터인즉 수요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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