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브 딜런·롤링 스톤스 등 50대가수 빌보드톱텐 건재…한국가요 노화 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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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KBS '가요톱텐'이나 MBC '인기가요50' 의 1위를 이미자나 패티김이 차지한다면? 아니 조금 내려 가서 조영남이나 심수봉이 차지한데도 그것은 대단한 뉴스감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가수는 여중생까지 내려가는 저연령화 추세와 함께 서른이 안된 김건모 (29)가 고령 대우를 받는 '조로 (早老)' 현상이 특징이기 때문. 그러나 미국에서는 35년째 활동중인 보브 딜런 (56).롤링스톤스 (리더 믹 재거가 올해 54세)가 각각 41번째 (딜런) , 30번째 (스톤스.라이브 앨범 포함) 신보를 빌보드 톱텐에 올리며 장수를 자랑하고 있다.

빌보드 최근호 앨범차트는 스톤스의 '브릿지스 투 바빌론' 을 3위에, 딜런의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 를 10위에 각각 올렸다.

데뷔 첫주에 빌보드 톱텐에 들었다면 대개 플래티넘 (1백만장) , 안돼도 골드 (50만장) 는 너끈히 넘길 성적이다.

우리로 치면 신중현이나 키보이스가 가요톱텐에서 환호를 받으며 활약하는 셈인데 상상이 가지 않는 노릇.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나이 어린 가수에선 찾을 수없는 숙성미라는, 진부하지만 그외엔 달리 설명을 붙이기 곤란한 수준작이기 때문. 스톤스는 전작 '부두 라운지 (94년)' 와 비슷하면서도 60년대 악동 시절의 야성을 되살린 새로운 음악을 들고 나왔다.

그들은 힙합.올터너티브 전문가를 프로듀서로 써서 현대감각을 가미했지만 후배들의 모던록과는 다르고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 하는 향수와도 거리를 둔 숙성된 음악을 들려 준다.

딜런은 이번 음반에서 어둡고 뒤틀린 현대인들의 사랑을 몽롱한 블루스로 표현하고있다.

그 관조적 시선은 노장의 성숙미를 짙게 풍긴다.

두 음반의 성공은 10대 시절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자라난 기자.평론가들의 열띤 호응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성 높은 노장들에 대한 애정은 한국평단도 뒤지지 않는다.

결국 노장들의 장수는 음반시장의 성숙도, 특히 안정된 성인 구매층의 존재에 주원인이 있다.

미국은 음반산업의 근간인 앨범시장을 30대 성인들이 주도한다.

이들은 70년대 사춘기 시절 벗이었던 노장들의 신보를 지속적으로 후원한다.

95년 해체 13년만에 재결합한 이글스의 앨범 '헬 프리지스 오버' 를 4백만장이나 구입한 것이 이들이다.

또 재결합한 플리트우드맥의 '더 댄스' 와 폴 매카트니의 '플레이밍 파이' 를 앨범 차트 2, 3위에 띄워 주고, 데뷔 30년이 다되가는 메틀그룹 에어로 스미스에 플래티넘을 안겨준 것도 모두 이들이다.

음반 사는 일이 가물에 콩나듯하고 어쩌다 좋은 노래를 들으면 길보드 (리어카 행상) 테이프 사는 데 그치는 한국성인들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에 대해 국내에는 성인들이 들을 만한 좋은 음악이 안나오기 때문이란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발라드.포크.록.재즈등 댄스를 제외한 전 장르가 음반당 수만장도 안팔리는 현실은 그같은 반론의 근거가 되줄 최소한의 관심마저 부족한 수준임을 드러낸다.

앨범과 달리 미국의 싱글시장은 주고객이 흑인과 10대들로 바뀌어 랩.힙합이 득세하고 있다.

빌보드 싱글차트 1위는 퍼프 대디 등 흑인스타 독무대다.

올해 싱글1위 백인가수는 '음음음 봅' 의 10대 형제 그룹 핸슨 정도. 그래서 노다웃트.카디건스 등 성인 취향의 백인밴드들은 싱글을 아예 내놓지 않고 앨범으로만 승부하는 경향마저 있다.

어쨌든 성인위주의 앨범시장과 10대위주의 싱글시장이 공존하며 가요산업을 질.양 양면에서 공히 풍요롭게 해 주는 미국의 풍토는 국내가요계 입장에선 무척이나 부러운 대상인 셈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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