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경제…문제점과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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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들어 전체 상장사 7백74개 가운데 4%인 29개사가 쓰러졌다.

한달에 평균 3개 이상꼴로 무너졌다는 계산이다.

이처럼 잇따른 기업 부도 속에서 비자금 파문까지 겹쳤으니 주가 폭락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쓰러지는 기업들의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모두가 그럴만 했음을 알 수 있다.

무모하게 사업확장 아니면 터무니없는 차금경영의 결과들이다.

거기다가 대형 부도의 쇼크속에 불안해진 금융기관들이 자금 회수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계기업의 자금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실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악순환이다.

경쟁력없는 기업들이 퇴출되는 원칙론을 벗어나 금융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정부가 문제의 금융기관들에 대해 한은특융 카드를 꺼낸 것은 더이상의 악순환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정부는 시장원칙을 표방하면서도 충격을 감안해 스스로 예외조항을 만들어 왔으나 결과적으로 이것이 문제를 지연시켜온 셈이 되고 말았다.

한은특융만 해도 이처럼 어차피 할 바에는 기아문제가 터졌을때 진작 했었더라면 금융시스템에 대한 마비현상은 훨씬 덜했을 것이라는 지적들이 많다.

부도유예협약도 마찬가지다.

진로가 문제됐을때 원칙대로 부도처리했었더라면 그 이후에 연속적으로 터져나온 부실기업 문제들에 대해 정부나 채권은행단이 한결 간명한 원칙에 따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같은 부실기업인데도 '해태 = 협조융자, 쌍방울 = 화의 (和議) , 태일정밀 = 부도유예협약' 등으로 처리방법이 제각각으로 혼란을 빚었던 것이 그러한 예다.

은행등 금융권이 제기능을 못하는 것도 기업 부도를 부채질하고 있다.

연쇄부도 여파로 6월말 현재 은행권의 부실여신 규모가 전체 여신의 1.8%인 4조7천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은행들도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한계기업은 물론 정상기업도 넘어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풍전등화 (風前燈火) 의 신세가 됐지만 단기적인 처방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형 부도를 막고 한은특융으로 금융기관의 급한 불을 끄면 일단은 진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금융계 관계자는 "당국에서 돈을 많이 푼다고 해 이 돈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가지 않는다.

우량기업이나 가계대출쪽으로 많이 흘러갈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부도 도미노' '주가폭락' 으로 대변되는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약발이 먹히지 않는 단기처방 보다 기업들의 강도높은 구조조정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같다.

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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