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잠무 카슈미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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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마운트배튼 백작은 영국의 마지막 인도 총독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후 인도를 독립시키면서 힌두교도의 인도와 이슬람교도의 파키스탄 둘로 나눴다.

그러나 서북부 잠무 카슈미르만은 마지막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잠무 카슈미르의 행정권은 힌두교도가 잡고 있었지만 주민의 다수는 이슬람교도였다.

마운트배튼 백작은 마하라자 하리 싱에게 결정권을 넘겨줬다.

힌두교도였던 그는 당연히 인도를 택했다.

잠무 카슈미르 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 산맥이 둘러싼 험준한 산악지대인 잠무 카슈미르는 BC 3세기 이후 힌두문화의 중심지였으나 14세기 이슬람왕조의 지배아래 들어갔다.

19세기에 들어선 펀자브지방의 시크왕국에, 다시 힌두왕조인 도그라왕국에 합병됐다.

1947년 하리 싱은 도그라왕국의 군주로서 잠무 카슈미르가 인도연방에 가맹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곧이어 제1차 인도.파키스탄전쟁이 발발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65년 제2차 전쟁, 71년 제3차 전쟁을 거쳐 잠무 카슈미르를 분할했다.

여기에 62년 중국.인도 국경분쟁때 중국이 북동부 일부를 차지, 셋으로 갈라졌다.

현재 잠무 카슈미르는 이들 세 나라가 군사적으로 팽팽히 대치하고 있다.

특히 인도.파키스탄 양국은 상대방을 의식해 핵무기.미사일까지 갖추고 있어 핵전쟁 발발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인도는잠무 카슈미르의 현상 유지를 바라지만 파키스탄은 파키스탄에 합병하는 것이 목표다.

파키스탄의 전략은 잠무 카슈미르를 국제문제화해 주민투표로 장래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민의 3분의2가 이슬람교도이므로 파키스탄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때문에 인도는 국제문제화에 절대 반대다.

독립 50주년 축하를 위해 인도.파키스탄을 방문중인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을 수행한 로빈 쿡 외무장관이 영국이 잠무 카슈미르 문제를 중재하겠다고 나섰다가 인도의 반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3류 강국에 불과한 영국' 이 잠무 카슈미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은 난센스라고 공박한 쿠마르 구지랄 인도 총리의 말이 언론에 보도되고, 영국내에선 노동당 외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잠무 카슈미르의 국제문제화에 대한 인도의 민감한 반응과 과거 식민대국이었던 영국의 위상 (位相) 저하를 함께 실감할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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