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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아리소극장이 문닫는 사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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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소극장 객석에 앉아 연출을 맡은 김예기(38)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유섭 대표(왼쪽). [조영회 기자]

# 그들은 지역 문화의 전사였다

  2007년 봄, 천안시 신부동 중심 상권에 ‘아리스타’라는 주식회사가 생겨났다. 한때 인기스타였던 여배우 허윤정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아카데미와 전용극장(100석), 전속극단까지 갖춰 관심을 모았다.

  이후 대표가 바뀌고 극단 이름도 ‘호두’로 변경되면서 단원들이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리소극장은 지난해만 연 인원 1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역문화예술계가 주목했다. 극단 호두 단원들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천안 땅에서 전업 배우를 꿈꾸며 전쟁터에 나간 전사처럼 연극에 목을 걸었다.

 # 문화운동을 벌이다

  좌석 10% 기부운동을 벌였다. 아리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 마다 매회 10%의 좌석을 문화소외 계층에게 무료로 할애했다. 아동보호시설·대안학교 학생과 장애인 등이 초청됐다. 기업이 1회 공연 전 좌석을 매입해 문외소외계층을 초청하는 1 by 1 운동도 벌였다. 디너 스페셜을 통해 먹고 마시는 기업의 회식문화와 접대문화도 개선해 보려고 노력했다. 야우리 등 백화점을 상대로 VIP마케팅 활동도 벌였다.  

# 이유섭 대표, 집을 팔다

  극단 호두를 이끌던 이유섭(49) 대표가 최근 집을 내놓았다. 1년 동안 아리소극장을 운영하면서 진 빚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이씨는 아산에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한때 잘나가던 사업가 소리를 들었다. ‘기업가로서 사회에 진 빚을 갚자’는 뜻에서 아리소극장을 지원하다가 2008년 봄 극단 대표까지 맡게 됐다.

  이씨는 사업체까지 정리하고 극단 일에 올인했다. 라면을 주식으로 삼고 허름한 잠자리도 불평 한마디 없이 행복해하는 단원과 이들의 열정을 알고 찾아주는 관객을 보면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은 고사하고 싹도 트기 전에 아리소극장은 문 닫을 위험에 처했다.
 
  # 싹이 잘리다

  천안에서 연극 판을 벌이자니 갑갑한 노릇이었다. 이미 시민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대형기획사들의 공연에 익숙해 있었다. 전국적인 인기를 끈 대작을 시(市)가 나서서 싸게 공급하는 상황에서 지역 연극단체가 살길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다. 설상가상 건물주가 송사에 휘말리면서 그나마 생존의 터전이었던 극장마저 남의 손에 넘어갈 상황이 됐다.

  그래도 공연은 계속했다. 극단 창단 이후 16개가 넘는 작품을 선보였다. 1년 내내 쉬지 않고 무대에 섰다. 그렇게 해야 지역 문화가 뿌리를 내린다고 생각했다.
 
  # 희망의 끈을 붙잡다

  아리소극장은 그 동안 적지 않은 관람객을 끌어 모았다. 물론 모두가 유료 관객은 아니었다. 우선은 사람을 공연장으로 오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초청 행사를 자주 열었다. 평균 객석 점유율이 30%를 넘어섰고 몇 작품은 객석이 가득 찼다. 시간이 갈수록 유료 관객 수도 점점 늘어났다. 충남뿐 아니라 충북, 경기도에서도 관객이 입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비록 경매로 건물이 넘어가 극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이 대표와 단원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극단 호두는 오는 7월 1일부터 12일까지 국립극장을 대관해 놓았다. 그런데 이들의 대표작 ‘짜장면’이 국립극장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극단 호두의 운명이 지역문화의 현주소다. 지역사회가 극단 호두를 일으켜 국립극장 무대에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장찬우 기자
 
 ※극단 호두는 최근 메세나협의회(기업의 예술문화단체 후원을 중개하는 비영리법인)의 중소기업 매칭펀드에 가입해 기업의 후원을 기다리고 있다. 현지 기업이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 메세나에서도 그 액수 만큼 후원한다. 극단 호두 단원들은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에서 ‘짜장면’을 공연하고 있다. 단원들의 월급이 밀리자 이유섭(左) 대표가 대관료를 대고 단원들을 서울로 올려 보냈다.


위기의 지역문화를 말한다

◆윤성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천안지부장 “지역문화 육성책 마련 절실”

 천안의 경우 외형적으로 보면 문화예술 투자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산의 대부분이 시립예술단 운영에 쓰인다. 시립예술단 운영비를 축소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이 필요하다. 문화정책을 책임지는 시 공무원 역시 문화행정에 대해서는 문외한일 뿐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기도 전에 자리를 옮긴다.

 ‘예술의 전당’ 만든다고 지역문화가 사는 것은 아니다. 지역단체는 무대에 서볼 기회도 없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봉서홀 등 대공연장은 서울 대형기회사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생산자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향수 층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육성을 위한 중장기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김태원 한국연극협회 천안지부장 “지역 공연단체 설 자리 없다”

 예전에 비해 문화예술단체 대한 지원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시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 등 제약이 많다. 아울러 대형 기획사들이 내려와 이미 검증된 대작들을 싼 값에 공연하기 때문에 더 더욱 지역 공연단체는 설 자리가 없다.

 생산자단체도 반성해야 한다. 시에서 주는 지원금을 당연시 한다. 시가 지원을 끊으면 자립할 수 있는 단체가 얼마나 되겠나. 역설적으로 지원을 중단해야 지역문화가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천안시가 자체적으로 문예진흥기금을 적립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경쟁력 있는 문화예술단체에 지원을 집중하고 역량을 키우는 교육사업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중열 대학로예술극장 대표 “문화적 요충지로 자리매김하라”

 2005년 6월 천안 아카데미 극장이 있던 자리에 대학로극장(186석)을 개관했다. 직원 하나 없이 혼자 청소까지 하고 있지만 전기세도 밀릴 만큼 어렵다. 자치단체가 박물관·미술관은 지원하면서 공연장은 지원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1달에 3개 작품 정도는 무대에 올린다. 비록 아동극 등 외부 기획공연 대관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10% 정도는 자체공연으로 채우려 노력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지역단체가 올리는 공연은 돈 안내고 보는 것을 당연시 하는 풍토가 있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전이나 청주만 해도 지역문화가 어느 정도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 천안도 여건이 나쁘지 않다. 지리적 이점에 더해 문화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립예술단이 지역단체와 활발한 교류를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한 인재청소년뮤지컬단 대표 “나눠주기식 예산지원 문제”

 민간차원의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역문화가 살아야 도시도 성장한다.
 천안·아산 모두 수도권에서 유입된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들이 타지에 나가 문화욕구를 충족하는 꼴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 인가. 때 되면 시에서 지원하는 예산 받아 형식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단체는 갈수록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아무런 정책 방향도 없이 형평성이라는 미명아래 나눠주기 식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자치단체도 문제다. 지역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노력하는 단체는 그만큼 더 지원하고 타성에 젖어있는 단체의 분발을 유도해야 한다. 지역문화가 꿈틀대고 있다. 지금 큰 틀에서 문화예술 활성화 방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지역은 갈수록 정체성을 잃어갈 것이다.

장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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