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 노랫말 거칠어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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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때론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불러 심금을 울리고 때로는 세상에 대해 외치는 가수 안치환(38). 그는 대중성과 노래 운동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보기 드문 가수다. 3년 만에 들고 온 8집 앨범 '외침'은 그가 생생히 살아 있는 노래꾼이라는 걸 증명한다. 직설적인 말들로 가득한 가사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곡은 뒤늦게 가슴을 때린다.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류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가사를 펼쳐든 채 잠시 머뭇거릴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은 핵폭탄에 미사일에 온갖 무기 다 가지고 팔아먹고/만만한 놈 핵자만 내밀어도 평화 위협 ×소리들 지껄여 댈 때'(아메리카)

'영원한 적은 없어 영원한 친구도 없어 니 밥그릇 앞에 내 밥그릇 앞에/넌 ×××야 난 ×××야'(×××들)

일상생활에서야 널리 쓰이는 단어지만 문자화되거나 노래로 불릴 땐 왠지 낯선 단어가 눈에 띈다. 그러나 안치환은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이잖아요. 정확하게 세상을 바라본 게 아닌가요?"라 반문한다.

이번 앨범은 이라크 파병에 대해 노래한 '총알받이', 지역감정에 대해 비판한 '꼭두각시', 반전을 노래한 '스톱 더 워(STOP THE WAR)', 환경 문제를 짚은 '내버려둬', 촛불집회에서 느낀 감정을 담은 '해방구'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안치환판 '노래 현대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7집 앨범에서 세상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한 건 '매향리의 봄' 등 한 두곡 정도였다.

"사실 1990년대 이후는 세상에 대한 발언을 하기에는 너무 희미한 시대였죠. 인생에 대해 진하게 말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야깃 거리가 없었던 거죠."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그는 주장한다. 시대적 이슈가 미국에 치중돼 있는 것처럼 그의 앨범에도 미국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꼭이 친미.반미로 선을 긋는 건 아니라고 했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미국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인식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혼란을 겪을 수 있으니까요."

이번 앨범에서도 대중성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물속 반딧불이 정원', '연탄 한 장' 등 시에 곡을 붙인 아름다운 노래들도 수록돼 있다. 대중성을 얻어야 세상에 대해 더 큰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체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힘을 주면서 현실 인식에 대한 직격탄도 쏠 수 있는 뮤지션이라 다행입니다." 이번 앨범은 특히 공을 들였다. 1년이 걸려 '안치환과 자유' 밴드가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개인 녹음실을 만들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작업하기 위해서다. 안치환은 "음반 시장이 어려울수록 뮤지션의 철학이 담긴 완성도 높은 앨범을 만드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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