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적'은 내부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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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 300×36%=828.유효투표 2천3백여만중 최소 36% 지지인 8백28만표를 얻으면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는 산수풀이다.

너무나 쉬운 문제를 모두가 어렵게 풀려하니 머리가 헷갈리고 해답이 나오질 않는다.

이 공식은 이미 10년전 군사문화 청산을 내걸고 나온 야당이 3金으로 분열하면서 여당의 노태우 (盧泰愚) 후보가 당선된 87년 대선결과다.

김영삼 (金泳三) 28%, 김대중 (金大中) 27%로 두 金씨가 55% 지지를 얻고서도 36.6%의 盧후보에게 패함으로써 우리 정치사를 10년간 헛바퀴 돌게 한 한 (恨) 을 남긴 공식이다.

역사는 모양을 바꾸면서 반복되는 것인가.

이번엔 3金 청산을 내걸고 나온 여당이 분열하면서 야당이 앞서가는 36% 공식을 대충 따르고 있다.

여기에 92년 초원복집사건 같은 비자금 폭로전이 가미되면서 87년형+92년형 혼합형으로 나가는게 최근 형세다.

백중세를 보이던 두金전에 초원복집사건이 터지자 세불리해진 영남권에 '우리가 남이가' 라는 무드가 고조되면서 오히려 폭로를 당한 쪽이 42%로 낙승한 사례가 92년형이다.

비자금 융단폭격을 한 여당후보 지지율이 떨어지고 폭격당한 야당후보가 오히려 35.8%로 상승세를 보이는 이번 선거전이 당시를 닮고 있다.

나 자신 3金시대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중 하나다.

그러나 돌아가는 판세는 청산은 커녕 청산당하는 꼴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분열하면 파탄이고 분열의 약세를 만회하기 위해 폭로전 같은 무리수를 써봤자 결과는 이적행위로 끝난다는 사실을 일찍이 경험했으면서도 여당은 사지 (死地)에 자청해 들어가고 있다.

3金시대를 청산하고 부패정치인은 물러나야 한다고 검찰이 비장한 각오로 수사에 착수해본들 여당 지지율엔 큰 변화가 없으리라는게 정치평론가들의 지적이다.

많게는 35%에서 적게는 27%에 이를 콘크리트 DJ지지율이 굳어지면 굳어졌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고 설령 몇% 허물어졌다 해도 반사이익이 여당 지지로 돌아서지는 않으리라는 분석이다.

또 수사를 한다면 여야 가릴 것 없이 해야 하고 야당에 1이면 여당엔 10정도의 정치자금이 들어갔으리라고 누구나 짐작할 터인데 여당은 뒷전에 두고 야당 비자금만 캔다면 결국 심각한 대선 후유증만 남기지 않겠는가.

'적' 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권 내부에 있다는 상황판단을 여당후보는 해야 한다.

DJ지지는 많아야 35%선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남은 65%를 두李씨와 趙씨가 나눠선 누구도 35%를 넘을 수가 없다.

해답은 자명하다.

같은 뿌리의 여권 후보 두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연대하지 않고서는 3金시대 청산은 허공에 치는 메아리일 뿐이다.

이번 97년형 대선 독해법의 요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여권이 내부의 적을 어떻게 다스리고 결속.단합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바뀔 지 모를 가능성이 있다.

이 가능성이 없다면 선거결과는 보나마나다.

무엇이 내부를 흔든 적인가.

경선원칙을 무시하고 탈당한 이인제 (李仁濟) 후보에게 1차책임이 돌아간다.

경선탈락자를 품에 안지 못했고 아들의 병역시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이회창 (李會昌) 후보가 그 다음 책임이다.

여기에 여권 내부 실세들의 후보 흔들기작전이 분열을 조장했다.

서석제.이원종씨 등을 비롯한 이른바 YS 핵심측근이라는 인물들이 뿔뿔이 흩어져 조순 (趙淳).이인제후보에게 마음이나 몸이 가 있다.

당내에는 당과 선대위의 고위층에까지 은연중 후보의 낙마를 기다리는 낙마기대파가 있고 제3의 후보와 연대를 부르짖는 연대파가 있는가 하면 청와대 등 권력핵심과 당에는 경남고 4인방인지 5인방인지 하는 양다리파들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부류가 바로 힘을 분산시키는 제3의 적이다.

이런 조직, 이런 결속으로 누가 무슨 정치혁명을 이룰 것인가.

3金 청산은 커녕 결국 허울좋은 내각제로 영원한 3金시대를 자초할 뿐이다.

진실로 3金시대를 청산하고 정치혁명을 이룩하는 새 형식의 대선을 창출하겠다면 집권세력 스스로 면모일신의 당내 결속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외부의 적을 검찰이 수사하라고 윽박지를게 아니라 내부의 양다리파.낙마기대파들도 모두 힘을 합쳐 연대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정치혁명이고 무엇이고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권영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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