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경제·기술 피해 막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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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반도 비핵화 선언' 으로 인한 경제.기술적 피해가 막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92년 노태우 (盧泰愚) 전 대통령의 이 선언 이후 지금까지 최소 수천억원대의 경제적 손실과 함께 핵심 원자력기술 개발이 지체되는등 손해가 크다는 것이다.

이처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사용후 핵연료' 를 마땅히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

비핵화 선언은 핵무기는 물론 사용후 핵연료의 평화적 처리 까지도 포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재처리할경우 최고 60회까지 다시 원전 (原電) 의 핵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국내 가동중인 12기의 원전에서 발생되는 사용후 핵연료는 연간 4백50t 안팎. 경수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의 경우 t당 가치가 1억원가량임을 감안할때 매년 수백억원대의 사용후 핵연료가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고 '썩고' 있는 셈이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70년대 후반 이후 적체된 국내의 총 사용후 핵연료는 최소 3천억원 어치 이상일 것" 이라고 추정했다.

사용후 핵연료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재처리. 사용후 핵연료는 우라늄과 플루토늄.핵분열성 물질로 구성되며 이중 플루토늄과 핵분열성 물질을 뽑아내는 공정을 재처리라고 한다.

재처리를 마치고 남은 우라늄은 전체 사용후 핵연료중 96% 이상이어서 다시 핵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

이같은 일련의 재처리 과정을 '후행 (後行) 핵주기 기술' 이라고 일컫는다.

한국은 비핵화 선언에 발목이 잡혀 후행 핵주기 기술을 개발할 수 없는 상태다.

따라서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는 임시 저장고에 '묵혀'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전에 딸려있는 임시저장고 마저 저장용량이 한계 수위에 이르렀다.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재처리가 가능하다면 이런 고준위 폐기물의 양이 현재의 3% 이내로 줄어들 수 있다.

비핵화 선언으로 원자력 기술개발이 답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 원자력 개발 관계자는 "비핵화 선언만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후행 핵주기 기초 기술은 다 확보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지금으로부터 40년후쯤이면 지구상의 우라늄 자원이 거의 고갈돼 재처리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영국등 재처리 기술 보유 국가는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상태다.

한양대 김종경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아까운 사용후 핵연료를 마냥 쌓아두고 있을 수 없다.

세계 각국에 우리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의지를 밝히고 핵주기 후행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 말했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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