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해요!]“여행길 버스 안 옆자리…너는 내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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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미~쳤어. 또 실패다. 창피해서 회사도 그만두고 싶다. 오늘도 술로 아픈 마음을 달래야 하나?” 잘 될 것 같으면서도 항상 잡히지 않았고 노력해도 결과는 늘 같았다. 언제부터 그랬나. 아마도 군 제대 후부터였나 보다. 나의 연애사업은 한마디로 맨날 ‘꽝’이었다. 벌써 5년째다. “외롭다 흑~흑~” 연애하지 않으면 세포가 죽는다는데 암담하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그녀를 만나기 전 나의 과거사였다. 2007년 2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한 달쯤 뒤 직장 동료의 송별회를 마치고 천안~안면도~강원도로 무작정 여행을 떴다. 운명이었나! 여행길 버스 안에서 내 곁에 앉게 된 그녀. 동생처럼 느껴졌던 그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을 때 내 심장 소리가 커졌다. 순간 “이제 내게 한 번 더 시련이 찾아올지 아니면 행복이 찾아올 지 노력해야 될 때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들킬까 걱정도 됐지만 그녀와의 만남을 위해 회식자리, 영화, 여행 등을 준비했다. 그런 만남 속에서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녀를 향한 마음이 사랑인지 아니면 단지 너무 외로워서였는지. 확인을 해야만 했다. 고민만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생각에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받아들이던 그녀도 진지한 나의 태도에 “한 달간 서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 확인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한 달이 흐른 뒤 고향에 내려간 그녀가 휴대전화 배터리가 없어 전화가 안 됐다. 답답했고 그녀가 보고 싶었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그날 난 확신이 들었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하루 종일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오랜 침묵 끝에 전화가 걸려왔고 난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했다. 그녀도 내 마음을 받아들여 우리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 휴대전화에 ‘내 마눌’이란 글자가 등록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얼마나 좋았으면 ‘운명이란 정말 존재하나 보나. 내가 결혼하는 것을 보면~’이란 생각도 들었다.

 여자들은 다들 결혼 전 프러포즈를 받는 것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녀도 결혼 전에 프러포즈를 원했다. “안 하면 시집 안 온다’는 귀여운 협박도 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지만 막상 실행하려니 힘들었다. 무작정 시작은 해보자는 마음 하나로 그녀를 위해 늦은 시간 일단 재료를 준비했다. 양초와 풍선 이것 저것. 그녀가 오기 전에 풍선 100개를 입이 닳도록 불었고 집 거실마루 바닥에 양초로 그녀의 이름을 수놓고 꽃다발, 케이크도 준비했다. 그녀 도착시간에 맞춰 정장으로 갈아입은 후 양초에 불을 붙이고 기다렸다. (솔직히 양초에 불 붙이는 것 쉽지 않다. 한 두 개도 아니고 몇 백 개에 불을 붙이려니). 하지만 세상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나 보다. 촛불을 켠지 30분쯤 지나자 (허걱!)촛농이 마루바닥에 녹아 내리고 온통 집안 구석구석 연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마루바닥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큰일이 났다.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단 창문을 열고 환기시킨 다음 불을 끄고 있을 때 그녀가 들어왔다. 순간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왜 여자들은 멋진 프러포즈를 바라면서 약속시간을 잘 안 지키는지. 딱 10분만 일찍 왔어도. 멋진 프러포즈 하려고 했는데. 그리고 “뭐 하려고 했어”라고 물어보는 그녀에게 웃으며 이것 저것 하려고 준비했던 내용을 설명해줬다(사실 쑥스러웠지만 어때 둘만 아는 비밀인데~~~). 그녀는 “프러포즈 받은 것으로 할게”라며 난 작은 미소로 대답했다. 다음 날 마루에 녹아 있는 촛농을 처리하느라 땀깨나 흘렸다. 하지만 아무런 탓도 하지 않고 바닥을 긁어내는 그녀를 보고 얼마나 고마웠던지.

멋진 프러포즈는 못했지만 결혼을 앞두고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5년 동안 아무도 못 만난 것 같아. 당신과 함께 한 2년간 난 사랑을 다시 배웠고 앞으로 함께할 시간 동안 당신에게 사랑을 줄게.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이 것으로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생각해줘.”

도움 : 핑크캐딜락 웨딩타운 577-0608

 -일시 : 2009년 3월21일 낮 12시
 -예식장명 : 천안 그랜드웨딩홀
 -신랑 : 임만복(30·회사원) 신부 : 정진숙(25)
 -신랑부모 : 모 염정분 신부부모 : 부 정진양, 모 이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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