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미디어로 하나되는 천안·아산 기대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천안과 아산은 우리 국토에서 남한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이다.

 특히 천안 ·아산은 다른 지역에는 없는 3대 보물이 있는 곳으로 천안 삼거리로 상징되는 교통의 요충지, 아산만 간척지로 새로 숨쉬는 산업, 그리고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온천과 충무공의 역사 문화의 웰빙이다.

  앞으로 우리가 캐내야 할 이 3대 보물의 천안 아산지역에 다시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 더 생겨난다. 바로 중앙일보의 천안 아산 지역섹션이다.

 “가까이 있는 작은 산이 먼데 있는 높은 산을 가린다” 이것은 다산선생의 말씀이다. 아무리 크고 높고 휼륭한 명산이라고 해도 가까이 있는 자기 동네의 작은 산보다는 못한 것이다. 서울은 한국의 수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지만 실제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중앙이 아니라 나의 지역 정보가 더 소중하고 긴요하다. 그러면서도 가까이 있는 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은 높은 산도 아울러 보아야 하는 정보의 균형이 필요하다.

  중앙일보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지방판의 부속이 아니라 독립된 지역섹션을 창간하게 된 것은 바로 가까이 있는 내 산을 찾자는 새로운 언론의 패러다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이 미디어는 중앙언론의 단순한 지역판이 아니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저널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지역에서 지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의 시각이 아니라 전국에서 지역을, 대한민국 전체에서 천안 아산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게 된다.

  시험삼아 프랑스의 유명한 사진작가 얀 베르트랑이 최근 발표한 ‘하늘에서 본 한국 사진’을 보면 알 것이다. 땅에서 땅을 찍은 사진은 가깝고 먼 차이밖에는 없는 일상의 사진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하늘에서 찍은 사진은 우리가 여태껏 보지 못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보여준다. 내 위치가 분명해질 뿐만 아이라 다른 것과 대조를 이루면서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번 새로 나온 신문도 하늘에서 찍은 사진처럼 천안-아산지역의 전체 모습을 다른 공간과 대조하면서 놀라운 풍경으로 보여줄 것이다.

 일본서도 그랬지만 고속열차 신칸센(新幹線)이 들어오게 되었을 때 지방 도시들은 너무도 화려한 기대를 안고 부푼 꿈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수도인 도쿄와 일일생활권이 된다는 사실에 지방 도시가 크게 번창하고 도쿄 사람들이 지방으로 내려와 문화와 예술과 생활, 경제가 다 활성화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막상 신칸센을 늘리고 지방마다 교육 오락 문화시설을 다 채우고 났을 때 그것은 신기루 같은 꿈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교통이 편리해지자 오히려 지방 거주자들이 도쿄로 역류하면서 모든 것이 피폐해지고 사막화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산 대구 등 지방의 문화와 경제가 오히려 교통의 편리함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어령 고문이 태어난 현 아산 좌부동 마을 뒤로 설화산이 보인다. 1995년 온양시와 아산군이 통합돼 아산시가 됐다. 조영회 기자

그러나 천안 아산 지역은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천안 아산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천안 아산 지역은 오히려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학생과 엔터테이너와 예술가들, 학자와 교수들, 일반 시민들까지 오히려 인구가 늘어나서 경제와 문화예술과 도시가 생동하는 곳이 됐다.

 놀라운 일 아닌가? 우리나라 지방 도시들도 다 이렇게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면 지방 균형 발전을 외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서울과 지방의 균형이 이루어지게 될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천안 아산 지역만 유독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성장하고 있는가?

 그 비밀은 지리적 이점 뒤에 다섯 가지 지역의 특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산업라인이 존재하고 있어서다. 삼성과 현대 등 주요 기업들이 기업도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산업의 길을 리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영국의 유수 기업이 충남과 천안 지역에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들었다. 그만큼 입지조건이 좋다는 이야기다.

 둘째, 교육라인이 존재하고 있어서다. 순천향대학이 들어오면서 이 지역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과거 고등교육기관이라고는 없던 신창 지역에 이 대학이 들어오면서 전국 30위권 대학에 진입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호서대학과 선문대학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서울의 유명 분교들이 다수 정착하면서 학생들을 유치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셋째, 역사라인이 존재하고 있어서다. 이순신, 맹사성, 이지함 등 한반도 역사를 빛내온 선현들과 독립열사의 현장이 역사의 맥을 이어주고 있어 문화적 인프라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넷째, 온양온천과 호수, 좋은 산과 물이 있는 곳이다. 웰빙 시티로서의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숲과 산, 물이 마르지 않는 도시, 건강 웰빙의 실현이 가능한 지역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다섯째, 실버 그린 도시다. 레지던스 주거단지가 대거 들어서면서 붙박이 인구가 늘어나고 한편에서는 서울의 파고다에 모여들었던 노인들이 매일같이 전철을 타고 이곳에 온다. 강북에서 교통체증이 심한 강남으로 가는 시간보다도 더 빠르다.
 
그러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KTX 역명을 지으면서 천안 아산 지역은 서로 간에 어색해진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수도권 전철이 들어왔고 또 새로운 미디어도 탄생하는 마당이니 서로 간에 통합 비전이 생겨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철길이 사람의 몸을 잇고 미디어가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새 효과가 일어났다. 크라미도모나스라는 단세포 생명체는 서로 분열하여 번식하다가도 주위의 환경이 나빠져서 영양분을 얻기 어려워지면 다시 결합하여 하나의 몸이 된다고 한다. 천안 아산도 경제 위기 속에서 슬기롭게 하나로 뭉쳐 함께 상생하며 자기 지역을 번성시키는 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고향이 아산이고 평생을 언론과 학계에 몸 바쳐 온 나로서는 이번 천안·아산 지역섹션의 창간에 즈음하여 이보다 다 기쁜 일이 있을 수 없다. 천안시장과 아산시장은 모두가 열정과 의욕 그리고 창조적인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라고 들었다. 두 시민의 리더가 한 신문을 읽어가며 협조하고 융합한다면 정말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놀라운 일을 창출해 낼 것이다.

이어령 본사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