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동기 자극… 환경이 중요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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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안방은 없어졌지만 덕분에 아이들이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돼 정말 행복하다는 백승철씨 가족.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기자 choi315@joongang.co.kr

백승철(34·남현동)씨 부부는 안방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편안한 잠자리 대신 아이들의 책 읽는 기쁨을 택한 것이다.

 백씨의 큰딸 진영(10·사당초3)양은 구순구개열(선천적으로 윗입술이나 입천장이 갈라진 것, 일명 언청이)을 갖고 태어났다. 돌 전에 여러 번의 수술을 하며 집보다는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진 딸을 위해 백씨 부부는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진영이가 눈을 뜨고 있을 때 아내가 항상 책을 읽어줬어요. 책을 읽어주고 그림을 보여주면 방긋방긋 웃어서 간호하는 동안 마음만은 즐거웠다고 말하더군요.” 백씨는 매일 저녁 아내가 먹을 도시락과 진영이가 볼 책을 열심히 날랐다.

  병원에서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인 진영이는 퇴원 후에도 늘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언니가 책을 읽으니 동생 미영(9·사당초2)양도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졌다. 백씨 부부는 진영이가 건강을 되찾은 후 수많은 교육서를 읽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접하는 것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스펀지와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을 접하느냐, 곧 교육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책을 읽혀 책 속의 유익한 지식들을 빨아들이도록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씨는 집 근처 서점에 들렀다가 거실을 도서관으로 꾸며주는 이벤트를 보게 됐다. 응모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설령 뽑힌다 해도 식탁 하나 겨우 놓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을 도서관으로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뒤 거실이 안 되면 안방을 도서관으로 꾸며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반대하는 아내를 끝까지 설득해 결국 안방 짐을 다 들어내고 책장을 넣어 가족 도서관을 만들었다. 가운데는 6인용 탁자를 중고로 구입해 배치했다. 아이들과 상의해 도서관 이름도 지었다.‘책을 읽고 꿈을 키우는 방’이라는 의미의 ‘책꿈방’. 덕분에 백씨 부부는 둘 만의 공간을 잃었다. 잠을 잘 때도 책꿈방에서 아이들과 탁자 다리를 피해 불편한 자세로 자야 한다. 그래도 아이들이 안방에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숙제도 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해준 것 같아 참 뿌듯하기만 하다.

  월급날은 아이들 책장이 채워지는 날이다. 살림이 넉넉지 못해 아이들에게 책을 마음껏 사다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백씨는 김진홍 목사의 자서전을 떠올렸다. “그분은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가난한 탓에 책 살 돈이 없었대요. 그러자 어머니가 머리를 잘라 아들이 읽을 책을 사주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머리를 잘라 책장을 채우자고 생각했죠.” 그 날로 인터넷에서 가정용 이발도구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로 고생도했지만 1년 반쯤 지난 지금은 이발사도 울고 갈 정도의 수준급 실력이란다. “한 달에 1~2번씩 머리를 자르는데 드는 돈만 아껴도 책 두 권은 살 수 있잖아요. 아이들도 아빠가 머리를 잘라서 산 책이라며 책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열심히 읽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죠.”

 백씨는 꼭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부모가 할 일은 아이들에게 공부하고 싶은 환경과 공부에 대한 의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부모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씨의 두 딸은 모두 글 쓰는 것을 좋아해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글짓기 교실에 보내고 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3개월 수강료가 1만 5000원으로 저렴하다. 아이들은 벌써 크고 작은 글짓기 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아이들을 위해 백씨는 매일 인터넷에서 글짓기 대회 정보를 수집한다. 독후감이나 산문대회 일정과 요강을 프린트 해 책꿈방에 붙여놓고 아이들의 동기를 자극한다. 아이들이 글을 쓰고 나면 백씨가 꼭 점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독후감을 쓸 때는 줄거리보다 내용 위주로 써야 한다. 산문을 쓸 때도 개요를 먼저 작성해 주제에 벗어나지 않게 써야 한다”는 아빠의 조언 덕분에 두 딸 아이는 글쓰기 박사가 다 됐다.


프리미엄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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