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94년 女의원 얀 피아 사건 폭로서적에 프랑스 정가 태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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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장관이 자신의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을 살해했다는 충격적 폭로서적이 프랑스 정가에 태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94년 2월 발생한 프랑스 여성국회의원 얀 피아 피살사건에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프랑수아 레오타르 프랑스민주동맹 (UDF) 당수 등 2명의 야당 지도자가 개입돼 있다는 내용의 책이 최근 출간돼 정가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 폭로전문 주간신문인 '카나르 앙셰네' 의 두 기자가 최근 공동 출간한 '얀 피아사건 - 권력내부의 암살자들' (플라마리옹 간) 이란 제목의 책은 피아의원 암살사건을 제2의 우파정당인 UDF의 레오타르 당수와 마르세유 시장 겸 의원으로 역시 UDF 중진인 장 클로드 고댕 두 사람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시사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같은 UDF소속으로 남부 바르 출신 하원의원이었던 피아의원은 피살 당시 프로방스.알프.코트 다쥐르 지방의 군기지 매각을 둘러싼 비리관련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군기지로 사용됐던 부지를 마피아가 연루된 민간기업에 싼 값에 불하해주는 조건으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기로 돼 있었는데 이 사실을 피아의원이 알게되자 국방장관으로 있던 레오타르등 두 사람이 군 정보기관을 동원, 피아의원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관련증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군정보기관 출신 예비역 장성의 제보라면서 이같이 주장하고 있다.

또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거론치는 않고 있으나 책을 읽어보면 암살을 지시한 장본인이 두 사람임을 쉽게 알 수 있게 돼 있다.

레오타르 당수는 최대 우파정당인 공화국연합 (RPR) 의 필립 세갱 당수와 함께 우파의 대표주자로 차기 대통령후보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거물급 정치인이다.

그는 문제의 책이 출간되자 즉각 자신에 대한 '정치적 음모' 라고 일축하면서 기자 2명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한편 언론을 동원한 고질적 음해공작을 발본색원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피아의원 살해사건은 지방 유흥가 주도권 다툼과정에서 피아의원에게 앙심을 품은 동네 불량배 2명의 소행으로 일단 수사가 마무리돼 이미 법원에 송치된 상태다.

그러나 이번 파문으로 전면적 재수사가 불가피해지면서 경우에 따라 피아사건은 프랑스 정가를 뿌리째 뒤흔드는 '국가의 사건' 으로 비화할 전망이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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