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황 후 생존 전략 ‘노벨 과학상 운동’서 찾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5호 02면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고양이’ 이야기의 교훈은 뭘까. 여우는 적이 나타났을 때 생존방략이 100가지나 있다고 고양이에게 자랑했다. 고양이는 자기는 나무로 올라가는 한 가지 방법밖에 모른다며 여우를 부러워했다. 한 떼의 사냥개들이 나타나자 고양이는 나무로 올라가 목숨을 구했다. 여우는 100가지 방법을 두고 갈팡질팡하다가 붙잡혀 죽었다.

이 우화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의 효과성을 말했다. 경제위기를 선택과 집중으로 헤쳐나가라는 교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여우와 고양이’엔 맹점도 있다. 나무가 없었으면 고양이는 죽었을 것이다. 사냥개들이 여우를 해치운 다음 나무 밑에서 고양이를 기다리는 장기전에 들어갔으면 고양이도 죽었다. 경제 위기는 장기전이다.

월스트리트발 경제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은 우리에게 ‘올라갈 나무’는 없다. 지금은 차분한 대안의 모색, ‘전략적 갈팡질팡’이 필요할지 모른다. 여러 대안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 결여된 ‘선택과 집중’은 취약할 수 있다.

외국에 대한 관심도 편중되는 경향이 있다. 주로 미국ㆍ중국에 관심이 많다. 특히 잠자던 거인 중국의 급부상은 세계의 이목을 끄는 블랙홀이었다. 우리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본이나 유럽연합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일본에 대한 관심은 스포츠 경기나 독도, 역사 왜곡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한·일전에서 1 대 2로 지면 분통을 터뜨리며 잠을 못 이룬다. 반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0 대 13인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기도 한다. “노벨상은 수십 년 전 성과에 수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노벨 상을 지금 많이 받는다는 게 별 의미가 없다.” 과연 그럴까.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은 노벨상을 받을 만한 기초과학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수십 년 뒤 한국이 노벨상을 받을 것이란 예상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중앙SUNDAY가 지난주부터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를 시작으로 ‘일본 과학의 힘, 노벨상 수상자 연쇄 인터뷰’를 내보내고 있는 건 불황일수록 기초과학에 파고 들어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세계는 농업경제→산업경제→기술경제 사회로 진화해 왔다. 이제 기술기반 경제에서 더 근원적인 과학기반 경제로 이동해야 미래의 먹거리가 보장될 것이다. 불황을 어찌어찌 견뎌낸다 해도 불황 이후의 국가 경쟁력은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기사가 나간 뒤 삼성의 한 간부는 “삼성은 왜 노벨상을 못 받는가”라고 자문했다고 한다. 기업가와 학자들의 공부모임인 ‘포럼 새로운 한국’은 4월 15일 ‘노벨상, 일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중앙SUNDAY는 연쇄 인터뷰에 응한 일본 과학자들의 한국 방문 특강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노벨 과학상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이 운동은 꿀꿀한 한국사회에 교육ㆍ과학ㆍ통합ㆍ비전을 제시하는 기분 좋은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일본과 싸우기 전에 배울 건 배워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