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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2000년뒤, 유대인들은 다시 메시아를 죽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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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유대인 경찰연합 1·2
마이클 셰이본 지음,김효설 옮김
중앙북스, 384· 375쪽, 각 1만원

잘 짜인 한 판의 체스 게임 같은 추리소설이다. 처음과 끝을 체스판이 장식하는데다 ‘드러냄’과 ‘감춤’이 엇갈리며 빚어내는 체스의 서스펜스가 전편에 흘러서다. 작가는 범죄 스릴러 소설 문법에서 ‘무엇을 감출 것인가’가 ‘무엇을 드러낼 것인가’란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듯하다. 인물과 공간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는 달리 사건의 실마리는 갖가지 상징을 동원해 느린 템포로 보여주는 식이다.

소설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알래스카에 유대인 정착촌이 건설됐다는 대체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재건하지 못한 채 또다시 유랑 생활로 내몰렸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알래스카 싯카 특별구를 내주면서 살 곳을 마련해줬다. 단 조건이 있다. 60년 뒤엔 미국 본토에 땅을 반환해야 한다. 소설은 영토 반환을 앞두고 어수선한 싯카 지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주인공인 랜즈먼 형사가 머물던 호텔에서 한 유대인이 총에 맞아 살해된다. 랜즈먼은 고집스레 이 사건을 파고들고, 배후에 유대인 범죄 조직이 있었음을 알아낸다. 더구나 살해된 유대인은 한 세대에 한번씩 태어난다는 ‘메시아’의 가능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체스는 이 작품의 핵심 모티프 구실을 한다. 소설의 앞머리에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체스판에 의문 부호를 붙이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 체스판에 담긴 비밀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이끌고 있다. 마치 체스 게임을 관전하듯 작가가 배열해 둔 실마리를 따르다 보면 추리소설 특유의 ‘반전과 긴장의 미학’을 경험할 수 있다.

작가의 말마따나 이 소설은 추리소설 장르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다.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은 1940년대 미국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대표 작가인 레이먼드 챈들러와 로스 맥도널드에 대한 오마주의 성격도 짙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한 장르 문학으로만 포장하기엔 아쉬움이 따른다. 2001년 퓰리처상 수상자란 작가의 명성 때문이 아니다. 코엔 형제가 이 작품의 영화화를 선언해서도 아니다.

문제는 이 소설이 차용하고 있는 ‘유대인-디아스포라’의 역사적 배경이 지닌 무게감이다. 유대계 미국인인 작가는 수천년 간 이어온 유대인 유랑의 역사에 연민을 보이면서도, 아랍 민족을 향한 유대인의 적개심에 대해서는 불편한 시각을 감추지 않는다. 그의 연민은 ‘목줄을 풀어줘도 달아나지 않는 개(1권 p.152.)’로 그려지고, 그의 분노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정통 유대교인들이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전을 폭파하는 장면(2권 p.268.)에서 극대화 된다.

이 소설은 긴박한 체스 게임처럼 ‘메시아’로 추앙 받던 한 유대인의 살인 사건을 숨가쁘게 추적한다. 그러나 그 판 위에 유대인 문제라는 ‘말’을 배열하면서 문학적 울림도 길어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메시아를 죽였다’는 책의 부제엔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을 넘나든 이 작품의 성과가 응축돼 있는 것 같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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