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영일기] "앞만 보지말고 뒤도 보는 지혜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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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9월초, 상해 인근의 상주시 국가공업단지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던 나는 중국행 비행기 안에서 책 한권을 펼쳐 들었다.

한국에서 28년째 주재하고 있는 일본의 '상사 (商事) 맨' 모모세 타다시의 저서인데, 제목이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 이다.

이 도발적인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그 내용을 헤쳐봐야 겠다는 호기심과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 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의 객관적인 시각에, 나는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까지 쳤다.

30, 40년 동안 일본만 보고 달려온 한국은, 뒤에서 어떤 나라가 어떻게 한국을 뒤쫓아 달려오고 있는지 그것을 연구해야 한다.

왜? 사람은 뒤에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뒤를 완전히 커버하고 그리고 앞으로 나가자는 얘기다.

이렇게 잘라 말한 그는 '뒤에 있는 그 어떤 나라' 로 중국을 지목했고, "일본만 보고 달리던 한국이 '자장면' 에 포위됐다" 라는 풍자적인 말로 그 '어떤 나라' 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내가 중국으로 가는 기내에서 모모세 타다시의 책을 펼쳐든 것은, 바로 우리를 포위한 그 '자장면' 의 현실을 직시해봐야겠다는 자각에서였다.

상해 인근에 있는 상주지역에 도착해서 현지 공단을 살펴본 나는 타다시의 생각이 지나친 과장만은 아니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먼저 공단의 규모가 우리의 울산공단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대규모적인데다, 각종 공장 지원시설같은 간접시설 또한 완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와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가공단이 52개 정도 된다고 하니, 국가 차원의 공단이라고는 내세울 만한 것이 울산이나 구미, 창원 등 몇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주눅이 들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뿐인가, 그같은 공단을 조성하는 일을 그들은 최근 몇년동안 결코 외부에 떠들어대거나 서두르지 않고 조성해왔는데, 대신 내가 만난 지방 행정 책임자 즉 지역담당 당서기 및 상주시 시장을 비롯한 관련 공무원들의 열의는 그 어떤 나라에서 보다 뜨거웠다.

특히 외국자본을 유치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가히 우리 외국 손님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큼 지극 정성이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 책을 펼쳐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장면에 포위된 한국' 에 관한 풍자 부분을. 그리고는, 내가 살펴본 국가공단의 그 위세등등한 모습을 떠올리며 이런 상념에 빠져 들었다.

실제로 우리는 그 동안 일본 따라잡기를 우리의 지상과제인 양 여기고, 그 사이에 우리 뒤를 쫓고 있는 많은 나라들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일본 뒤만 꿰뚫어지게 보고 달리는 사이,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존재 자체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는 이제 일본을 향한 초조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우리를 뒤쫓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경계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물론 그 경계심은 우리 뒤를 쫓고 있는 나라들의 발목을 잡자는 수작이 아니라, 애써 갈고 닦은 우리의 세계시장을 고스란히 남에게 내어주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자는 자각을 의미한다. 당당한 경쟁속에서 앞만 보지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는 지혜를 갖자는 얘기다.

우리 자동차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내업체들이 국내서의 경쟁 이상으로 우리를 뒤쫓는 회사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시각으로 대처해야만 할 것이다.

[박병재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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