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산불로 '지구의 허파'가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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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칼리만탄 지역과 수마트라섬 등의 산불로 이미 60만㏊의 원시림이 불탔다. 또 산불에서 발생한 연무 (煙霧) 로 동남아시아 주변국까지 극심한 대기오염 피해를 입고있다. 인도네시아 산불 뒤에 숨어있는 벌목회사와 대규모 기업농등의 무차별적인 벌목 실태를 살펴본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칼리만탄 지역 원주민인 르와 보토르 딩지트 (59) . 그는 지난 4월 환경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갖고있는 골드만 환경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자신이 속한 벤티족이 지난 수백년 동안 살아왔던 땅의 소유권을 확인받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지난 10년간 힘겨운 싸움을 해 승리한 그의 노력이 평가를 받은 것이다.

숲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등(藤) 나무를 재배, 수출해 얻는 수입으로 소박하게 살아온 벤티족이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81년. 조지아 패시픽이라는 거대한 미국 벌목회사가 벤티족 거주지역에 작업장을 차리는 과정에서 등나무 숲과 공동묘지를 뒤엎어 버렸다.

이 회사는 또 목재수송을 위해 1백㎞나 되는 길을 뚫으면서 라와강 지류 마다 다리 대신에 댐을 쌓아버렸다.

라와강의 물은 크게 줄어들었고 반대로 상류쪽은 물이 넘쳐 늪지로 변했다. 이로 인해 원주민들과 외부 세계가 차단돼 등나무를 수출할 수도 없게 됐지만 목재수송로 사용허락 조차 얻지 못했다.

80년대 중반 조지아 패시픽사의 벌채권이 수하르토 대통령 측근이 소유주로 있는 봅 하산이라는 회사로 넘어갔으나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93년에는 벌목회사측이 무장호위를 받는 가운데 불도저로 등나무 숲을 밀어붙이는 일까지 일어났다.

벤티족들은 자신들의 오랜 권리를 거세게 주장하기 시작했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권리포기를 종용하며 압력을 가해왔다.

벤티족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인근 부족들과 연합해 자카르타로 몰려가는등 커다란 사회문제로 부각시켰다.

이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도 지난해 9월 벤티족에게 1만㏊의 산림을 관리할 권리를 부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약 5백80개의 벌목회사가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벌목면적의 30%는 수하르토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20개 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지난 70년 64개 벌목회사가 7백68만㏊에서 벌목작업을 벌였으나 80년대초 10여개국 5백여개 회사 4천8백㏊로 확대됐고 벌목을 위한 불지르기로 인해 주변지역 어린이들이 호흡기 질환·눈병·천식등을 앓기 시작했다.

기업농들과 벌목회사들은 쓸만한 나무들을 베어낸 뒤 다양한 식물종 (種) 들이 어우러져 있는 원시림을 무차별적으로 태워 없애고 그 자리에 특용작물이나 성장이 빠르고 재질이 강한 나무를 심어왔다.

이때문에 82~83년 가뭄 때에도 산불이 발생해 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 살던 박쥐나 작은 동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나무열매를 먹는 오랑우탄이나 새들도 마찬가지였다.

92년~93년에는 칼리만탄 동부의 원시림 80만㏊와 조림지 75만㏊가 불에 타버렸다.

쿠타이 국립공원의 대부분이 파괴됐고 산불에서 살아남은 나무의 70%는 가뭄으로 말라 죽었다.

이같은 이유로 인해 1억㏊가 넘는 인도네시아 산림 가운데 72~90년 사이 1천4백60만㏊가 사라졌다.

연평균 80만㏊ (서울 여의도의 약 2천9백배 면적)가 사라진 셈이다.

환경단체들은 수하르토 정부가 여전히 추진하고 있는 '칼리만탄 토탄 (土炭) 산림 메가프로젝트' 에 커다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칼리만탄 중부에 위치한 1백만㏊의 원시림을 논과 조림지로 바꾸고 1백만명을 이주시키겠다는 이 메카톤급 사업을 인도네시아 정부는 '석기시대' 를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문명사회로 이끌어 내는 작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를 전혀 받지 않은 데다 벌목회사들이 이익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추진하는 벌목사업이 환경과 원주민들의 삶을 파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환경단체의 시각이다.

현재의 산불이 12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세계자연보호기금 (WWF) 인도네시아 본부는 화재의 위험을 미리 경고하지 못한데다 불법으로 불을 지르는 벌목회사를 찾아내지 못한 점을 들어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WWF측은 벌목수단으로 불을 지르는 것을 전면금지하고 이를 감시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이와함께 원시림을 단순 조림지로 전환하는 토지정책을 전면 재고할 것을 요구했다. 벌목회사나 기업농, 이주민들에게 거의 무한정으로 벌목권을 부여할 것이 아니라 딩지트의 벤티족이 보여준 것과 같이 원주민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들이 스스로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산림을 이용할 수도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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