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심해지면 한국은 빚 못 갚을 상황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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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런던에서 열리는 G20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익고 어설프고 잘못되고, 때로는 악의적인 외신 보도가 한국 경제의 이미지를 떨어뜨린다’. 최근 한국 경제의 위험성을 거론하는 외신 보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다. 한국 사정에 밝지 않은 기자들이 단순한 통계치만 보고 작성한 기사가 마치 정확한 보도로 포장돼 국제시장의 여론에 영향을 준다는 판단이다. 한마디로 ‘미디어 리스크’가 부쩍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계기로 영국과 미국에서 대규모 한국설명회(IR)를 개최하고, 주요 언론사를 방문하며 불끄기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어 얼마나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외채 진짜 많나=외신들은 한국의 외환보유액에 비해 갚아야 할 외채가 너무 많다고 주장한다. 위기가 심해지면 한국이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HSBC의 잘못된 추정치를 근거로 한국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이 102%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단기외채 비율은 9월 말 79%에서 지난해 말에는 75%로 떨어졌다. 단기외채에 1년 내 갚아야 할 장기외채까지 합친 유동외채가 외환보유액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 기사도 외채 내용을 따지지 않은 단순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조선업체 등이 환위험 회피를 위해 빌린 달러(390억 달러)는 빚이 아닌데도 FT는 이를 외채에 넣어 계산했다. 이를 제외하면 외환보유액 대비 유동외채 비율은 77%라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물론 단기외채 비율이 조금씩 하락하고 있지만 2005년 말(31.3%)이나 2006년 말(47.6%)에 비해선 급격하게 높아진 게 사실이다. 환헤지용 달러를 포함한 유동외채 비율도 2005년 말엔 41.1%에서 지난해 말엔 96%로 급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유동외채 비율을 100% 이내에서 관리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외신들로선 “환헤지용 달러를 제외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은행들 위험한가=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의 단골 메뉴가 시중은행들의 건전성 문제다. 이코노미스트도 HSBC의 자료를 근거로 한국 은행들의 예대비율이 130%로 위기에 취약하다고 보도했다. 받은 예금은 100만원인데 이를 기초로 130만원을 대출해 줬으니 좋은 은행이라 말하기는 곤란하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예대비율은 지난해 6월 126.5%에서 지난해 말에는 118.8%로 오히려 좋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반박했다. 게다가 미국처럼 양도성예금증서(CD)를 수신에 포함시키면 예대비율은 101%까지 떨어지고 농·수협, 기업은행 등 특수은행을 제외하면 비율은 더 떨어진다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하지만 118.8%의 예대율은 이코노미스트가 제시한 신흥 17개국 중 브라질·헝가리 다음으로 높다. 게다가 앞으로 예대율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은행으로 들어오는 돈은 많지 않은데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라 중소기업 대출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이후 연체율이 높아지는 등 부실 채권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은행이 안고 있는 숙제다.

◆진화 나선 정부=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G20 회의와 13일(현지시간) 오전 열리는 한국경제설명회를 통해 한국 경제의 현황을 설명한다. 사공일 무역협회장도 G20 조정위원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해 한국 경제 알리기에 나섰다. 또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은 영국에서 이코노미스트·FT·로이터 본사를 방문해 최근 이어지고 있는 한국 비관론에 대한 입장과 경제 현황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위 관계자는 “보다 정확한 내용을 알리기 위해 각 언론의 본사를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벤트성 홍보는 장기적 효과를 내긴 쉽지 않다. 이창용 부위원장도 “정부의 해외 홍보가 공 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한국 축구의 병폐를 닮았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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