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힘의 논리 - 德의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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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이 '전가 (傳家) 의 보도 (寶刀)' 처럼 사용하고 있는 '종합무역법' 상 슈퍼301조를 발동, 한.미간의 무역마찰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슈퍼301조는 미국과의 통상관계에서 불공정 협상대상국으로 간주되는 국가에 대해 무역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한 독소조항이다.

이는 빌 클린턴 미행정부의 행정명령을 뒷받침하기 위해 올해말까지 운용되는 한시 (限時) 조항으로서 형식적으로는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차단하겠다는 무역보복조치의 일환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어쩔 수 없이 99년3월까지 미국과의 자동차에 관한 외교전을 벌이게 됐다.

우리나라 정.재계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슈퍼301조 발동에 반발하고 나섰다.

법조계에서도 미국의 이같은 일방적 조치가 공정성이 결여된 명백한 불법행위이므로 우리도 세계무역기구 (WTO)에 즉각 제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오만한 힘 (power) 의 행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그들의 목표는 유럽과 더불어 아시아에서 반공.패권 (覇權) 을 확보하는 세계전략에 있다.

반공은 반 (反) 공산주의요, 패권이란 미국의 국익으로 포장된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두가지 힘의 구조를 의미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반공은 이데올로기의 종언 (終焉) 과 함께 이미 성취됐고, 이제 아시아에서 완전한 패권의 확보만이 그들의 최대 과제일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과거 일본의 '대륙공략' 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의 전략상 요충지인 한반도를 필수적 교두보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후 미군주둔론 역시 이러한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러한 미국의 언동은 모두 그들의 힘의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잠시라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서양정치사상에 있어 중심개념은 권력 (power) 이다.

따라서 서양의 정치이론은 곧 힘의 논리다.

정권을 'political power' 라 하고, 입법.사법.행정부의 세력균형을 'balance of power' 라 말하는데 모두 정치 자체를 힘의 행사로 간주하고 있다.

민주정치로 알려진 'democracy' 자체만 해도 엄밀히 따지면, demos (다수) 와 kratos (힘) 의 합자로 '다수의 힘' 이라는 말이고,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정치원리를 제공했던 유교 (儒敎)에서는 힘의 논리를 패도 (覇道) 라 하여 왕도 (王道) 의 대립개념으로 사용했다.

맹자 (孟子) 는 "힘으로써 인 (仁) 인 듯이 꾸미는 정치는 패도요, 덕 (德) 으로써 진정한 인을 실천하는 정치는 왕도다" 라고 했다.

다시 말해 패도는 '백성들이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해 마지못해 좇을 뿐' 이고, 왕도는 '가슴속에서 기꺼운 마음이 우러나와 진실로 따르는' 현상을 의미한다.

힘의 논리가 개인주의적 사고에 의한 배타적 (排他的) 성격을 갖는다면, 덕의 논리는 개인의 유기적 (有機的) 관계를 유지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원리에 근원한다.

맹자는 특히 왕도의 실상을 '70여명의 제자들이 공자 (孔子) 를 항상 따라 다닌' 사실을 하나의 예로 제시한바도 있다.

학문을 전제로 한 사제 (師弟) 관계는 강요나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의 힘의 논리는 어디까지나 비문화적.비도덕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이러한 힘의 의식구조 속에서 살아 온 미국과의 외교관계에서도 우리는 그 힘과 덕의 양면성을 잘 저울질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미통상마찰을 볼 때, 우리나라는 지금 독일의 철혈재상 (鐵血宰相) 으로 일컬어졌던 비스마르크 같이 외교력이 뛰어난 외교대통령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병철 유도회 사무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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