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화의,은행거부로 불가 판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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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아 채권단이 법정관리 '굳히기' 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은행권은 법정관리, 종금사등 제2금융권은 조건부 화의 (和議) 로 각각 입장을 달리 했었다.

종금사들은 지난달 25일 채권기관 대표자회의에서 기아가 적정금리를 보장해주면 화의에 동의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었다.

기아가 화의조건으로 내건 연6%의 이자를 A급 기업어음 (CP) 의 할인금리인 연13.5%대로 높여달라는 조건이었다.

그러던 종금사들이 이제는 방침을 바꿨다.

종금사들은 기아가 높은 금리를 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또 은행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화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고 받아들였다.

화의가 이뤄지려면 채권액의 4분의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주요 채권은행 가운데 산업.신한.하나.한일등이 처음부터 화의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들의 채권액만 합해도 전체의 4분의1이 넘는다.

다른 채권기관이 모두 동의해 줘도 이들이 틀면 화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화의는 계산상 애초부터 안되는 게임이었다.

H종금 임원은 "주거래은행등 대형채권은행의 동의없이는 나머지 금융기관만으로는 화의가 이뤄질 수 없는 것 아니냐" 며 "채권단 내부에서 불협화음을 내며 처리를 질질 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 말했다.

이런 판단들이 종금사들의 방침선회에 많은 작용을 한 듯하다.

결국 대세 (大勢)에 따라 어느 쪽이든 빨리 방침을 정해 해결을 보자는 것이다.

이제는 채권단이 언제까지 기다려줄 것이냐가 관심사다.

지금까지 채권단은 스스로 법정관리를 신청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의에 조건부로나마 응해줄 듯하던 종금사마저 돌아선 이상 상황은 달라졌다.

화의가 안될 것이 뻔한데도 마냥 기다려 주겠느냐는 것이다.

기아가 끝내 법정관리신청을 거부하는 마당에는 채권단이 나서서 법정관리를 신청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기아 역시 6일로 정해진 최종시한이 채 되기도 전에 '화의 고수' 를 밝혀 정면대결 불사태도를 다시 확인했다.

문제는 기아가 추가지원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다.

화의를 먼저 신청한 ㈜진로는 술 판 돈으로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는 술과 같은 1회성 소비재가 아니다.

차라리 부동산에 가깝다.

특판행사로 판매고를 높이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다.

실제 8, 9월 기아의 판매실적은 내리 하향세를 긋고 있다.

소형.준중형.중형.대형등 거의 모든 차종이 마찬가지다.

기아로서는 재산보전처분 결정이 내려진 3개월간의 시간을 벌었기에 그 이후의 정치적 변수에 기대를 걸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권단이 법정관리로 입장을 모은 이상 화의는 물건너 간 것처럼 보인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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