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포천 방수로 공사 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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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90년대 중반 이후 논란이 거듭돼온 경인운하와 굴포천 방수로 건설사업의 추진 여부가 정부와 시민단체, 지역주민 등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협의회에서 결정된다.

이 같은 방식은 갈등을 빚고 있는 각종 대형 국책사업이 사회적 합의절차를 통해 진행되는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합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열린우리당) 의원이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여섯 차례의 간담회를 주선하며 중재에 나선 끝에 이뤄졌다.

우 의원은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시민단체, 지역주민 대표 등 이해당사자들은 '굴포천 유역 지속가능발전협의회(이하 협의회)'를 구성, 앞으로 1년간 협의를 통해 경인운하 등의 건설 여부를 결론내리기로 합의했다"며 5개 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이해 당사자들은 경인운하 사업의 공정성 평가를 위한 '협의회'를 구성하고 ▶내년 4월 말까지 운하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 짓기로 했다. 또 ▶논의기간 중에는 굴포천 방수로를 폭 40m로만 건설하고 ▶경인운하의 경제성 분석은 방수로 폭 40m공사를 전제로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경인운하 건설에 찬성하는 건교부와 주민대표 측, 이에 반대하는 환경부와 시민단체 측이 6명씩을 협의회에 참여시키고 재적위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경인운하 사업 실시를 결정키로 했다.

정부가 92년부터 추진해온 굴포천 방수로 사업은 상습 침수지역인 인천시 계양지역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계양구 귤현동과 인천시 서구 시천동을 잇는 길이 14.2㎞, 폭 40m의 대규모 배수로 건설사업이다. 또 경인운하는 굴포천 방수로를 활용해 시천동과 한강 행주대교를 연결하는 길이 18㎞, 폭 100m의 운하를 만드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들 사업에 대한 사업타당성과 환경파괴 논란이 거세지면서 굴포천 방수로는 2003년 이후 공사가 중단됐고, 경인운하는 착공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그동안 새만금 간척사업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풀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원만한 합의를 통해 해결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서는 의사 결정 절차와 준수 약속까지 미리 정해 놓아 합의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다.

특히 경인운하 논란의 당사자들이 직접 협의회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향후 결정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경인운하 논란이 장기화된 것은 홍수 피해 방지를 위해 시급한 굴포천 방수로 사업과 수도권 물류난 완화를 목적으로 한 경인운하 사업이 한데 엉킨 데도 원인이 있다. 두 사업의 건설구간은 14㎞가량이 겹친다. 정부에서는 경인운하를 건설할 경우 울산에서 생산한 자동차와 서해안에서 채취한 모래를 서울로 쉽게 나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또 경인운하의 경제성도 충분하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환경단체는 정부가 물동량을 과다하게 추정했다며 경인운하에 반대해 왔다. 생태계만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러한 논란 때문에 굴포천 방수로 건설도 계속 늦어져왔다. 환경단체는 정부가 방수로를 경인운하 건설의 지렛대로 이용할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물론 경인운하 건설 여부는 올 12월 말에 나올 타당성 용역 결과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협의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질 경우 용역 결과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환경정의 오성규 사무처장은 "사업이 확정된 뒤 싸우는 것보다 처음부터 함께 논의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협의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우구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연구원장은 "만일 참여자들이 당초의 찬반입장만 고집한다면 사회적 합의 도출은커녕 국가적 경쟁력만 약화시킬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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