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세상보기]97 대선 백배 즐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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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통령후보를 고르고 선거운동을 벌이고 마침내 당선자를 뽑는 일련의 의식은 민주정치가 제공하는 축제 (祝祭) 의 하나다.

그런데 축제라면 거기에는 꼭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구경거리가 반드시 있다.

무엇이 당락 (當落) 을 좌우하는가, 그 '무엇' 이 바로 눈여겨봐야 할 핵심이다.

이것을 놓치면 축제의 기분을 만끽할 수 없다.

"오는 12월18일 15대 대선에선 후보자의 인품과 그가 내건 정책이 당락을 좌우할거야. " "영 동떨어진 얘기! 요즘 신문.방송이 하루가 멀다하고 내놓는 여론조사야말로 이번 대선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지. 1위를 달리던 집권당후보가 3위에서 허우적대는걸 봐. 그 여론조사 때문에 3자대결이 5자대결로 바뀌기까지 했지. 여론조사가 대선판도 자체를 뒤흔들어 놓았어. 공식선거운동은 11월에 시작되지만 이미 여론조사에서의 사이버 대결은 봄부터 시작됐어. 여기서 이겨야 12월 진선 (眞選)에서 이기게 되는걸세. " "그렇지 않아. 여론조사가 흥미롭다니까 요즘은 지지율과 당선 가능성이 따로 발표되는 기상천외의 경지까지 접어들지 않았나. 그런 여론조사에서 1등을 하면 뭘해. 핵심적인 볼거리는 TV토론이야. 토론결과에 따라 지지율이 오르락 내리락 하잖는가. 단호한 태도를 보이다가 어느 순간 나도 부드러운 남자예요 하면 그만 깜빡 죽는 사람들이 많지. 그럴듯하게 받아넘긴 답변이 나중에 곰곰 생각하면 어딘가 모순된 것인걸 알아차려도 이미 때는 늦어. 사람을 홀리는 임기응변, 이것이 바로 당락을 좌우할걸세. " "아무리 TV토론을 잘 해도 실제로 표를 많이 얻어야지 표가 적으면 다 쓸데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지. 지역할거에 성공한 후보들은 이제 자기 지역표를 지키며 딴 지역표를 빼오고 있어. 이게 당락의 관건이야. 호남표를 80% 확보한 국민회의가 '영남문턱을 닳도록 뛴다' 라는 신문제목도 못봤나. 아직 영남표를 결집못한 딴 후보들도 곧 '우리가 남이가' 를 호소할걸세. " "지역별 무더기표가 어디 하루 이틀된 얘긴가.

역시 이번 선거의 하이라이트는 후보, 정당간의 합종연횡 (合縱連衡) 이 될걸세. 고사성어 (故事成語)에서 유래된 본래의 합종연횡 말일세. 지금 절대강자로 등장한 DJ에 대항하기 위해 반DJ연합이 곧 태동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어. 이것이 바로 전국칠웅 (戰國七雄)가운데 제일 강성한 진 (秦) 나라로의 병탄 (倂呑) 을 막기 위한 6국의 합종책이지. 그런데 이에 대항하는 DJ의 현대판 연횡책은 전국시대와는 달라. 각개격파 대신 각개유혹으로 후보를 사퇴 안하도록 만드는거야. 그러려면 절대 강자가 없다고 엄살을 부려야지. " "그게 바로 이번 대선의 최고 볼거리인 '표정관리' 라고 하는거야. 지금 DJ는 표정관리를 하느라고 정신없대. (아,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터져나오려는 이 즐거운 웃음. 71년 '청와대에서 만나자' 고 한 약속이 드디어 26년만에 성사되나보다.

그러나 'DJ가 웃는 꼴은 절대 못보겠다' 는 사람들을 자극하면 안되지. 그렇지만 어떤 합종이 이루어져도 DJ의 절대우위는 계속된다는 저 여론조사 좀 봐! 도저히 안되겠네, 어이 참모, '마스크' 의 짐 캐리나 '배트맨' 의 잭 니컬슨을 좀 불러줘. )" "자네는 이번 선거의 최고 구경거리를 DJ의 표정관리로 보는군. 혹시 이회창 (李會昌) 의 낙마 (落馬)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았나?" "똑똑한 등마자 (登馬者) 도 없는데 그런 드라마가 일어날까. " 김성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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