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미우라 주몬著 '대노년'…노년기 남성들 인생 지침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처 (妻) 는 젊어서는 애인, 중년엔 상담상대, 늙어선 간호부 (婦)" 라는 말이 그런대로 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져 노년에는 남편도 처에게 간호부 (夫)가 될 정도로 평등해졌다.

60세가 넘어 이혼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뉴스거리도 아니며 쓸쓸하고 구박받는 노인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간 '대노년' (大老年.海龍社 刊) 은 부제인 '늙어서 발견하는 남자의 삶의 보람' 에서 보듯 노년기의 보람있는 삶에 대한 책이다.

수필형식의 이 책은 남성학 원론 (原論) 이기도 하다.

정년퇴직 이후의 '인생 이모작' 을 희망하는 남성들에겐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저자 미우라 주몬 (三浦朱門.72) 은 1980년대 중반 문화청 장관을 지낸 인물로 자신의 삶을 예로 들면서 노년의 의미를 쉽게 풀고 있다.

모두 10장 (章) 으로 이뤄진 이 책은 각장마다 튀는 제목을 앞세워 눈길을 끈다.

'남자의 홀로 삶은 무섭지 않다' '마누라로부터의 탈피' '늙어서 발견하는 즐거움' '노년의 보람있는 삶은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 (프로세스)에 있다' '목적을 잃었을 때 성숙이 시작된다' '남자는 정년 (定年) 후에 창조적이 된다' 등이 그것이다.

'노년이 되면 욕구의 종류가 달라진다' 라는 장에서 저자는 배만 채우던 젊은 시절과 달리 노년에 접어들면서 여러가지를 만들어 먹고 싶은 욕구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처럼 노년은 사물을 대하는 기초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고독 가운데 창조의 기쁨을 안다' 는 장에서는 남과 접하지 않고도 혼자서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부인이 밥을 지어서 가족에게 먹이는 것은 즐거운 의무이지만 혼자 해먹을 때도 나름대로 궁리하고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가지라는 것이다.

목표를 잃으면 모든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저자는 인생이란 과정 (프로세스) 이며 삶의 목적자체가 죽을때까지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과정형이 목적을 달성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목적형의 생활방식만으로는 파탄을 맞기 쉽다는 지론을 편다.

목적지향형은 주변으로부터 증오만 살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성숙한 나라에는 유연성이 있듯이 목적추구로부터 벗어났을 때 인간은 창조적이 된다고 말한다.

'정년이 된 남자는 창조적이 된다' 는 장에서 저자는 정년이야말로 남자가 자신의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한다.

그는 부부가 결혼하여 일평생 살며 만드는 문화를 '서로의 충돌을 피하는 애매한 제3의 문화' 라고 말한다.

노년은 이런 시대를 지나 자신의 문화를 만드는 시기다.

즉, 자기 문화의 특수성, 또는 편견있는 것을 백번 의식하면서 거기서 보편성을 만들어갈때 보다 창조적이 되며 그것이 정년이 주는 기쁨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최후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

부모는 자식들에 가치관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자식은 부모를 부정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저자는 우리 인생에 최후까지 남는 것은 배우자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고독중에 배우자를 다시 발견하고 프로세스형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노년이 아니냐고 그는 반문한다.

저자는 끝으로 자신이 남성인가, 언제 남성이었던가, 여자들이 경계를 풀고 친절해질만큼 늙었는가를 생각하지 말고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귀중한 눈을 가지게 됐다는 것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살라고 조언한다.

도쿄 = 김국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