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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고독하고 불행했던 2인자 조선왕조 비운의 세자 12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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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왕이 못 된 세자들
함규진 지음, 김영사, 264쪽, 1만1000원

이 책은 지은이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불행했던 남자들의 이야기”다. 조선 왕조의 27명 세자들 중에서 왕이 된 세자는 15명에 불과했다. 12명의 세자가 왕이 되어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 비운의 12명이다. 조선 최초의 세자였으나 17세에 이복형의 칼에 목숨을 잃은 이방석(의안대군)부터 8년간 볼모 생활을 하고 돌아왔으나 아버지의 싸늘한 눈초리만 받다가 두 달 만에 사망한 소현세자, 왕이 되어보지 못한 세자 영친왕 등의 이야기는 조선 왕조의 역사를 ‘인간적인’ 각도에서 엿보게 해주는 렌즈를 제공한다.

지은이는 “우울은 조선의 모든 세자들에게 공통된 것”이었다고 한다. 책임과 의무가 지나치게 무거웠다.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억지로 학문을 익히고, 아침저녁으로 왕과 모후에게 문안하고, 정치적 의혹을 받을까 봐서 개성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고독했다. 양녕대군은 아버지 태종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도 그 아버지의 손에 버림을 받았다. 태종은 당시 정국에 무인보다는 문사형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난히 정치적 압박이 심한 시절 한 가운데 놓였던 사도세자는 “특별히 운이 나빴다.” 지은이는 “사도세자를 숨막히게 한 것은 뒤주도, 골방도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만들어낸 위선적이고 경직된 세자 제도”가 그를 질식시켰다는 것이다.

지은이 함규진은 정치외교학(석·박사) 전공했으나 정약용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다 한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다양한 실록 내용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역사 속 인물을 정치적 역학 관계뿐만 아니라 사적인 맥락을 통해 조명한 시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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