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 읽기] 낙제 위기에 몰렸던 15세 소년 속 깊은 스승 만나 학자가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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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내 인생을 바꾼 선생님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안성찬 옮김
Y브릭로드, 248쪽, 1만원

책은 예순이 된 제자가 스승에게 바치는 뒤늦은 고백이며, 찬란한 헌사다. 낙제의 위기에 몰렸던 15살 소년은 스승을 만나 세상에 눈을 뜨고 그의 걸음을 따르며 ‘정신적 진보’를 향해 발맞춰 나아간다. 그리고 이순(耳順)의 나이에 스승의 가르침과 조언이 자신의 일생을 비춰준 등대였음을 깨닫는다.

저명한 과학사가인 지은이는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꾼 스승 하인리히 하네가 전한 지혜와 가르침을 기록한다. 화려한 수사는 없다. 하지만 하네 선생님이 보여준 삶과 세상·진리에 대한 통찰은 소박해서 더욱 예리하게 빛난다. 잔잔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내공이 느껴지는 통찰은 ‘교양’이라 불리는 인문학적 지식에 기인한다.

스승은 학문에 대한 제자의 열정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자신의 서재를 만드는 일은 아무리 서둘러도 이르지 않다”거나 “새로운 지식을 열망하는 사람에게 ‘끝’이란 없다”고 강조한다. 또한 진리와 지식을 추구하는 삶을 통해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하며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한 내적 분위기는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고 제자를 독려한다.

가르침은 지식의 습득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여행을 가치 있게 하는 방법과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바람직한 태도에 대한 깨달음도 학생들에게 전한다. 독일어·라틴어와 철학을 가르친 교사답게 “작은 쉼표 하나로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언어의 불분명함 때문에 우리가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거나 “최상급 표현을 남발하면 언어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된다”는 하네 선생님의 지적에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에 실린 60개의 가르침은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이처럼 멋진 스승을 만난 저자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질투심도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그럼에도 스승의 가르침을 독점하지 않고 독자들 앞에 펼쳐낸 저자에게 감사하고픈 마음도 든다. 만약 삶의 길을 이끌어 줄 스승의 손길이 아쉽다면 책장을 넘겨볼 만하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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