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 시평

중국도 허용하는 병원 영리법인, 우린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일자리 하나, 달러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특히 노동집약적인 의료산업은 10억원어치를 생산할 때 16.3명의 취업 유발 효과가 있다. 제조업(4.9명)의 3배 이상이다. 외자 유치에도 큰 몫을 한다. 실제 태국에선 의료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우수한 의료진을 육성한 덕에 아시아 최고의 메디컬 허브가 됐다. 2007년엔 무려 150만 명의 외국 환자를 유치했다.

한국의 의료제도도 장점이 많다. 최상위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고, 이들의 손재주도 뛰어나 의료의 질이 매우 우수한 편이다. 위암·폐암 등의 완치율에선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게다가 장비가 좋고 의료비도 비교적 싼 편이다. 이런 좋은 여건을 갖고서도 왜 아직까지 폐쇄적인 의료시스템을 유지하는 걸까. 문제는 윤 장관의 진단대로 의료를 산업으로 보지 않고,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이념의 상징물로 간주하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영리 병원을 허용하면 전문 경영인을 통한 병원 경영, 다양한 세일즈 기법을 이용한 외국 환자 유치, 보험사와 연계한 다양한 상품 개발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싱가포르 등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도 영리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다.

과거 정부도 이게 올바른 방향인 줄은 알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병원산업을 육성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이 “국내 의료 체계를 망치고 의료 양극화를 불러온다”고 반발하는 바람에 추진력을 잃었다. 공공재 성격이 강한 의료가 상업재로 바뀌면 비싸질 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의료진들이 부자한테로 몰릴 것이란 게 반대 논리였다. 당시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영리법인 문제는 ‘영리’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이념 문제가 돼 풀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현 정부 들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영리법인 문제는 지난해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아예 사라져 버렸다. 당시 미국 의료보험 체계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한 영화 ‘식코’가 상영되면서 의료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게 부각됐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처음 시작할 때 작업 중 잘린 2개의 손가락 가운데 하나를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주인공이 포기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한국은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했고, 미국은 사보험 위주여서 상황이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모든 병원이 건강보험 환자를 받아야 한다는 이른바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민영보험이 도입되면 우수한 병원의 의료진들은 돈 많은 사람만 돌볼 것이란 우려가 번졌다. 지난해 7월엔 제주특별자치도에 한해 시범적으로 병원 영리법인 허용을 추진했으나 주민의 반대로 무산됐다. 현재 보건복지가족부 공식 입장은 ‘방향은 맞지만 당분간 안 한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의료서비스의 획일화·평준화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영리법인의 길을 터놓으면 우려되는 부작용은 그다지 크지 않은 반면 병원들이 경쟁력을 키울 여지가 많다. ‘영리법인=병원 사유화’ ‘영리법인=부자를 위한 병원’을 막을 시장의 감시(회계·공시) 제도를 충분히 갖추면 된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라도 내국인 영리법인을 허용해 시험무대로 사용해 볼만하다. 마침 현 경제팀은 덩어리 규제를 완화키로 하는 등 서비스업 선진화의 시동을 건다고 한다. 윤 장관도 이 문제에 정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병원 영리화 같은 민감한 현안을 장관 혼자 힘으로는 풀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이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제 촛불시위 탓에 잃은 ‘실용’을 되찾아 국가 경제를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욕을 먹더라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현 정부는 이런 방향과 맞는 정부 아닌가.

박의준 경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