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중국-서양 사상 유사성 분석정리한 '도와 로고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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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양의 왜곡된 동양관을 비판하고 동양을 올바르게 인식하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는 근래의 지적 상황에서 나온 '도와 로고스' (원제 Tao and Logos) 는 주목할 만한 책이다 (강출판사刊) . 번역자는 그런 노력을 존중하고 있고 실제로 이 책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92년에 책을 펴낸 저자 장롱시 (張隆溪) 는 중국 출신의 재미 비교문학자답게 중국과 서양의 비교를 통해 동양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중서 (中西) 비교라는 범주에서 보면 이 책은 서로의 차이보다는 유사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 유사성을 바탕으로 양자를 포괄하는 보편성을 발굴하려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서양에서 플라톤.호머에서 데리다.말라르메에 이르는 철학과 문학을, 중국에서 공자.맹자.노자.장자.주역 등의 철학과 육기.유협.도연명.왕유.두보.이상은 등의 문학을 검토한다.

적절한 인용과 깊이 있는 해석이 돋보이는 그의 검토는 서양의 지적 전통이 발전시켜온 '생각' 들과 '생각하는 방식' 이 이미 동양에도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동양은 서양과 다르며 그것도 낮은 수준에 있다" 는 종래의 서양중심적 동양관을 깨고 있다.

그러나 풍부한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의문점이 남는다.

우선 저자가 연구에서 찾으려고 하는 '보편성' 은 굳이 동양전통과의 비교연구가 아니더라도 이미 하나의 전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 책은 해석학적 현상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

즉 문학 작품등에 나타난 보편성을 찾아냄으로써 중서 간의 유사성을 밝히려 한다.

하지만 저자가 사용하는 방법론은 어디까지나 서양의 지적 전통에 입각한 것이다.

그는 동양 전통 중에서 서양 기준에 맞아 떨어지는 것만 골랐고, 이러한 교묘한 선택을 통해 서양의 입장에서 동양을 아우르는 보편성을 입증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서양의 입장에서 해석학적 현상의 보편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양 전통을 끌어들인 것에 불과하다.

거꾸로 동양 전통으로부터 어떤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을 끌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도 (道) 와 로고스 (Logos) 의 유사성을 흥미롭게 비교하면서 저자는 양자 간의 차이를 지적한다.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로고스 중심의 서양철학은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의 '해체' 라는 개념이 나오면서 그 부정적 영향이 포착되었다.

반면 동양의 도는 원래부터 스스로의 질서를 만드는 동시에 이를 허무는 양면적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도가 로고스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저자는 후기구조주의나 해체론의 입장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런 한편 저자는 해석학적 현상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끊임없이 차이를 부정하고 유사성을 '지향' 하는 방법론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해체론의 기본 정신에 맞지 않는 주장도 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의 입장의 혼란을 본다.

이 혼란은 단순한 혼란인가, 아니면 로고스 중심주의를 넘어 해체에 도달하고 거기서 다시 해체를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생산적 혼란인가.

이 책은 동서비교에 하나의 획기가 될만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성민엽 교수 (충북대.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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