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구간(舊刊)이 잘 팔리는 이유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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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나 총선, 굵직한 스포츠 행사 기간에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게 정설입니다. 하지만 서점 매출을 보면 그건 선입견에 불과합니다. 작은 서점들이 문을 닫은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대형서점 종사자들은 지난 총선 때도 매출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출판 관계자들이 체감하는 시장과 실제 시장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요.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독자들이 이제 분위기에 쉽게 편승하지 않기 때문에 단기 ‘대박’이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고 애쓰다가 몸져 누운 사람도 많다지요. 그리고 ‘10억 부자’열풍은 책의 저자만 부자로 만들었을 뿐이지 않습니까.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자기 경영서들은 마치 ‘개혁’이 지고지선의 가치인양 사회 분위기를 끌고 가면서 오히려 40·50대들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각 서점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책들을 훑어 보십시오. 신간은 맥을 못춥니다. 상위권에 오른 책 중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문학동네)와 에쿠니 가오리의『냉정과 열정 사이』(소담출판사), 김훈의 『칼의 노래』,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세종서적),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21세기북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푸른숲)이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출간된 책입니다. 이중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조용히 밀리언셀러가 되었답니다. 신간 중에서는 정민 한양대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와 어린이에게 만화로 천자문을 가르치는 『마법천자문』시리즈(아울북) 정도입니다.

독자들이 책을 선택하는 안목이 꽤 깊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검증되지 않은 책에는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겠다는 뜻이 보입니다. 눈여겨봐야 할 현상인 것 같습니다.

정명진 기자 Book Review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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