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중고차시장 '귀향길 특수'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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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0여년간 중고차 장사를 하면서 대목인 추석녘에 낮술 먹기는 올해가 처음입니다. "

9일 오후4시쯤 중고차 거래업체 64개가 몰려있는 서울 장안평 중고차매매시장 인근의 한 호프집. 이들 업체에서 일하는 직원 3명이 생맥주를 마시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중고차 거래가 한산한 가운데 시세마저 뚝 떨어져 일할 맛이 안난다는 얘기였다.

예년 같으면 추석을 앞둔 이맘때면 이 곳에는 차를 사고 파느라 정신이 없었다.

'금의환향 (錦衣還鄕)' 의 한 증표인 (?) 승용차를 사기 위한 발걸음이 분주해지면서 평소보다 두배이상 팔리던게 관례였다.

그러나 올해는 "파리만 날고 있다" 고 말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발길이 뚝 끊긴 상태다.

간혹 한두명의 손님이 나타나면 직원들이 서로 호객 (呼客) 행위를 하느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중고자동차시장도 '추석특수' 는 커녕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 여파로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얇아진데다 기아자동차 세일등으로 추석 귀향을 겸해 중고차든, 신차든 승용차를 마련하는 신규 수요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 실태 = 장안평시장내 ㈜삼양자동차상사의 윤명섭 (尹明燮.48) 부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추석 한달전부터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해 보름전께 절정을 이루곤 했다" 면서 "올해는 지난해 추석에 비해 손님이 절반이상 줄었다" 며 울상을 지었다.

서울시자동차매매사업조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중고차시장 7곳에서 거래된 중고차는 9천8백76대로 7월보다 13.3% 감소했다.

이달 들어서도 매기가 살아나지 않아 장안평시장의 경우 하루 평균 1백여대만 팔린다는게 상인들의 추정이다. 이는 지난해 추석 (9월27일) 직전인 14~20일간 하루평균 팔린 중고차 3백60대에 비해 3분의1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때문에 장안평 상인들은 찾아오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 영업을 포기하고 아는 사람을 통해 손님을 소개받거나 단골고객 위주로 겨우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이같은 사정은 강남 삼성동 시장을 비롯한 서울 시내 5곳의 중고차시장도 마찬가지. 삼성동 ㈜한신자동차상사의 조규태 (曺圭泰.38) 사장은 "올해 내내 고전했고, 추석대목을 고대했으나 예년과 달리 고객이 줄어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서울시자동차매매사업조합 유성종 (柳晟鐘) 과장은 "그 어느해든 추석 직전에는 판매가 급증하는데 올해는 이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고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이처럼 시장이 침체되다보니 중고차 시세도 떨어지는 추세여서 현대자동차의 97년식 다이너스티 3천5백㏄가 1백만원정도 떨어진 3천2백만 ~ 3천4백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낙폭 (落幅) 이 더욱 커 지난 1월 9백90만원 하던 크레도스 2.0기본형 96년식의 경우 이달 들어 2백40만원 떨어진 7백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중고차시장에 찬바람이 불자 거래중개업체의 인기도 크게 떨어져 종전에는 점포당 권리금만 7억~10억원에 달했으나 요즘에는 사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신차 판매도 부진 = 완성차 업계의 추석특수도 예년보다 못하긴 마찬가지다.

기아자동차는 이달 1~8일 하루평균 8백42대의 승용차를 계약했다.

이는 평소와 다름없는 판매대수.

기아자동차판매의 제철 (諸徹) 이사는 "3년전까지만 해도 추석 직전에는 평소보다 두배이상 팔리던게 관례였으나 올해는 추석덕을 전혀 못보고 있다" 면서 "불경기탓도 있지만 최근 몇년간 자가용 소유자가 꾸준히 늘면서 신규 수요가 많이 줄어든 게 주요인" 이라고 말했다.

추석을 앞둔 8월중 완성차업체들의 승용차 판매실적은 10만9천9백대로 전달의 11만5천대보다 오히려 줄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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