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집'서 우리술 축제 한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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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당나귀 새낀가 보다.

술 때 아는 걸 보니' 라는 속담이 있다.

한번 술맛을 보면 더달라고 뒷발질칠 정도로 당나귀는 술을 좋아한다.

위 속담은 술이 있는 곳이라면 귀신같이 나타나는 술꾼들을 당나귀에 빗대 놀리는 말이다.

올가을 술꾼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할 축제가 열린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金田培) 은 97문화유산의 해 기념사업의 하나로 10일 오전 11시 서울중구필동 한국의 집에서 전국의 민속주를 한자리에 모아 전시.시음하는 '전통민속주 대축제' 를 마련한다.

'명절술은 민속주로' 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행사에서는 각 지방에 전승되는 국가.지방지정 민속주는 물론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지정 민속주도 발굴 소개돼 50여종의 향토술잔치가 벌어지게된다.

이날 한국의 집에 들어서면 전국에서 올라온 각종 술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술만 마실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한가위 차례법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전통적인 한가위 상이 차려지고 차례시범이 끝나면 주안상차림도 선보인다.

예법을 배웠으니 술한잔 마시지 않을 수 없다.

"불로초로 술을 빚어 만년배 (萬年盃)에 가득 부어 비나니다…. 어즈러진 바위 꽃을 꺾어 주 (籌) 를 놓으며 무궁무진 먹사이다…" 로 시작되는 권주가도 울려퍼진다.

소주.청주.약용주.탁주등으로 구분된 상에는 푸짐한 안주와 함께 감칠맛과 그윽한 향을 자랑하는 50여종의 술들이 기다리고 있다.

출출한 점심시간에 전통술을 시음해보고 안주와 함께 입에 맞는 술을 골라 마실 수 있다.

아쉬움이 남으면 현장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시음장 옆에는 전통적인 주조방법도 소개된다.

지금은 잊혀져간 소주고리 (소주를 내리는 기구).용수 (청주를 거르는 기구) 등이 전시되고 술 담그는 비법도 자세히 가르쳐 준다.

부족국가시대에 영고.무천.동맹 등과 같은 제천의식 때 춤추고 노래하며 술을 마시고 즐겼다는 기록으로부터 시작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전통술은 술상의 예법인 주도 (酒道) 를 만들고 혼례와 제사에서 예를 다하는 중요한 문화수단이었다.

그러나 근대화와 함께 소주고리에서 고아낸 소주는 자취를 감추고 막걸리도 그 맛을 잃어가 이제는 고유술에 대한 아련한 기억만이 남는다.

정부의 민속주 장려정책도 밀려오는 외국술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이번 한가위 만큼은 우리 술에 취하는 것도 색다른 문화유산 사랑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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