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유럽 언론 한국 경제 때리기 도를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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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럽 언론들의 한국 경제 때리기가 도를 넘고 있는 느낌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을 17개 신흥국가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헝가리에 이어 세 번째로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국가로 분류했다. 어제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의 단기 외채가 불안한 상황이라며 “순조로운 만기 연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경제가 불안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단기 외채의 비중이 크고, 은행의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우려할 만큼의 위기 상황은 아니다. 우선 유럽 언론이 인용한 통계부터 문제가 있다. 우리 외채 가운데 수출 기업의 환 헤지를 위한 단기 외채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실제 수출대금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청산되는 외채다. 또 지난해 하반기 은행들이 고금리로 시중 자금을 대거 끌어들이면서 예대율이 많이 낮아졌다. 통계 흐름만 살펴봐도 지난해 7월 이후 단기외채 비율이나 예대율은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분기 우리 경제성장률이 -5.6%를 기록해 충격을 안겼지만 미국은 무려 -6.5%로 추락했다. 수출을 비교해도 일본·대만·싱가포르의 수출 감소는 우리보다 심각한 지경이다. 환율 효과가 나타나면서 지난달 우리 무역수지는 33억 달러 흑자로 반전했다. 오일쇼크 여파로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낳았던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런 한국을 외환위기 고(高)위험국으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유럽 언론의 비관적인 시각이 금융시장을 코너에 몰아넣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유럽 금융위기에다 이런 비관론에 자극받아 적지 않은 유럽 자본이 서울시장에서 철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덩달아 원화 가치는 어제 외환위기 이후 최저인 달러당 1570원으로 마감했다. 지금 정부가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적극적인 대외 홍보를 통해 외신의 비관론이 우리 경제위기로 전염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역사적으로 잘못된 소문이 공황이나 파국을 부른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