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중국산책] 세상 일이 안다고만 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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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도 쉬지 않고
중국 전역을 누비고 다니는 원자바오 총리.

1월 말 다보스 포럼을 다녀온 뒤
3월 초 열리는 정협과 전인대라는 양회(兩會)를 앞둔 최근엔
중국인민대학과 톈진의 남개대학 등을 잇따라 방문하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무슨 메시지일까.
우선 학생들한테니 당연히 공부 잘하라는 얘기가 곁들여진다.

베이징지질학원을 졸업한 원 총리가
재학시절 36개 과목 중 35개 과목에서 秀를 받았다는 점도 설명되면서.

그러나 보다 중요한 얘기는 뒤에 있다.
물론 학생의 질문을 통해 답하는 형식이다.

학생 왈,
"원 총리는 어째 그리 한시(漢詩)를 많이 압니까."
원 총리 답하기를
"대부분 자습으로 배웠다."

원 총리는 연설이나 기자 회견에서
각종 한시를 이용해 소회를 피력하기가 일쑤다.

선양의 한 학자가 지난 4년 동안
원 총리가 인용한 한시에 대해 통계를 내 보았더니
95%가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원 총리는 학생 질문에 보충 설명을 한다.
"숙소로 돌아와 공부하다가 가장 늦게 불을 끄고 잠을 잤다.
또 자다가 한밤중에 일어나 다시 공부를 했다.
당시 시계가 없어 몇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새벽 2~3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 공부 중의 절반은 학교 교과목 공부,
나머지 절반은 학교 교과목 이외의 자습 공부였다"고.

상당히 학생들 기 죽이는 답이다.
아직 원 총리의 설명이 끝난 건 물론 아니다.

한시에 대한 인용은
연설의 맥락이나 분위기에 따르는 데
예를 들어 우환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당연히 貞觀之治나 唐書를 생각하게 된다.
'亂을 모르는데 어찌 治를 논하느냐'와 같은 식이다.

이어지는 원 총리 특유의 말쌈이 더 명품이다
'人之云 非知之難 行之惟難; 非行之難 終之斯難.'

원자바오 총리가 친히 설명하는 해설에 따르면
'아는 게 제일 어려운 게 아니다
행동하는 게 더 어렵다
그러나 행동하는 게 가장 어려운 건 아니다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처리하는 게 정말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에 원 총리의 치국에 대한 고민이 배어나는 듯 하다.
알기 위해 밤을 새워 공부를 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뛰어 다니면 행동에 옮기건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다 잘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하소연인 것이다.

운도 따라야 하고
하늘의 도움도 따라야 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중국에서
총리로서 중국이란 나라의 살림을 살아야 하는 고달픔이 배어난다.

그래도 중국은 복 받은 나라 같다.
이 정도 우환의식과 우국충정으로 무장한 총리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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